1815년 2월26일 지중해 엘바 섬에 유배돼 있던 나폴레옹은 탈출을 감행한다. 프랑스 정정이 불안한 데다 자신을 대서양의 외딴 섬으로 멀리 보내거나 심지어는 암살하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당시 왕이던 루이 18세는 나폴레옹을 압송하라고 제5연대를 파견하지만 “당신의 황제인 나를 쏠 테면 쏴라”는 나폴레옹의 한 마디에 모두 그의 편이 되고 만다.
그가 처음 6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엘바 섬을 탈출하자 프랑스 언론들은 ‘죄수 나폴레옹 유배지 탈출’이란 기사를 일제히 톱뉴스로 다뤘다. 그러다 그를 체포하러 간 군대가 오히려 그와 한편이 되자 ‘나폴레옹 장군, 파리를 향해 진군’으로 호칭을 바꿨다. 드디어 그가 파리에 도착하자 기사 제목은 다시 ‘황제 폐하, 파리 입성’으로 바뀌었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그가 놓인 처지에 따라 세상의 대접이 어떻게 달라지느냐를 보여주는 예로 자주 쓰인다.
요즘 그와 비슷한 기분을 맛보는 사람이 하나 있다. 프랑스 축구팀을 이끄는 레몽 도메네크 감독이다. 스위스와 졸전 끝에 비기고 한국과도 비긴 후 토고에 겨우 이겨 16강에 오르자 “가장 형편없는 감독” “함량 미달의 양계장 주인” 등 온갖 혹평을 받던 그가 스페인을 꺾고 브라질을 격파한 후 포르투갈마저 누르고 결승에 오르자 이제는 “용병의 귀재” “프랑스의 영웅”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프랑스 팀이 별 볼 일 없던 때는 “프랑스 팀 하는 짓이 프랑스 국내 사정과 비슷하다” “자신감과 단결력 부족이 근본 원인” “지단도 이젠 늙었다”라며 온갖 분석 기사를 내놓던 언론들이 이제는 “프랑스 팀은 우리의 희망” “선수들의 뛰어난 팀 플레이” “백전노장 지단”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일하기는 어렵고 말하기는 쉽다”는 속담이 실감난다.
시합 전 선수들이 어떤 경기를 펼치리라는 것은 감독은 물론 선수들도 짐작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감독과 선수 모두 영웅이 되느냐 역적이 되느냐가 갈린다. 세상은 결과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진정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월드컵을 보며 세상 평가의 덧없음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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