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팀이 전반전에서 토고에게 한 골을 먹었을 때는 “지는 줄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팀이 예상외로 못하는 데다 토고팀 실력이 기대 이상인 것이 맛 물려 비관했다는 이야기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북한에 진 이탈리아 팀이 숨어서 귀국한 적이 있다. 월드컵 사상 이변 중의 이변으로 꼽히는 경기가 1966년 영국 월드컵 때 우승후보인 이탈리아가 생각지도 않은 북한에게 1대0으로 패한 사건이다. 우승을 기대하던 이탈리아 국민들의 열렬한 응원이 분노로 바뀌자 겁을 먹은 선수단은 새벽에 귀국했는데 어떻게 알고 나왔는지 시민들이 몰려와 계란 세례를 퍼부었다고 한다.
한국팀이 이번 월드컵 대회에서 토고에게까지 참패하고 한번도 못 이긴 채 귀국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탈리아팀처럼 새벽 비행기편으로 귀국하는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온 국민이 거리에 나와 응원하고 붉은 악마 수천명이 독일로 달려가는 법석을 떨었는데 하위에 속하는 토고에 진다면 선수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94년 미국에서 월드컵대회가 열렸을 때 볼리비아의 대통령이 전용기를 타고 와 며칠을 묵으면서 볼리비아팀을 응원했다. 기자들이 그에게 “국내 정치는 내버려두고 대통령이 축구장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라고 묻자 볼리비아 대통령 왈 “우리 나라에서는 요즘 축구가 곧 국내 정치다”라고 말한 기사가 기억이 난다.
지금 한국이 그 지경이다. 온 국민의 관심이 축구에 쏠려 있다. 오죽했으면 신임 한명숙 총리마저 현장에서 한국-토고전을 응원했을까. 준결승전이나 결승전이면 몰라도 토고 정도와의 경기에 총리까지 경기장에 나가 응원을 한 것은 좀 오버액션인 것 같다.
토고에 이겨서 천만다행이기는 하지만 프랑스와의 대전에서도 토고 전반전 때처럼 졸렬한 플레이를 했다가는 연달아 골을 먹는 망신을 당할 것이다. 국민 응원에 비해 한국선수들의 플레이 자세가 좀 박력이 없다. 4강에까지 올랐던 한국팀이 주눅들린 듯한 모습을 보여주어서야 되겠는가.
한국은 1954년 처음으로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해 헝가리에 9대0으로 패하는 곤욕을 치른 이래 지금까지 해외원정 월드컵 경기에서 4무10패의 성적을 기록했었다. 토고 승리가 52년만에 잡은 한국팀의 첫 월드컵 원정 승리다.
이번 월드컵의 화제는 단연 호주팀 감독을 맡은 히딩크다. 후반전 8분을 남겨놓고 3골을 성공시킨 호주팀의 일본 격파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지휘관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스럽게 일깨워준 극적인 경기였다. 그는 확실히 전체 그림을 볼 줄 알고 선수들을 이해할 줄 아는 지휘관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실력으로 보면 일본팀이 호주팀을 앞선다. 그러나 일본팀은 기술로 싸우고 호주팀은 정신으로 싸웠다. “우리는 히딩크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결의를 보인 호주 선수들의 정신자세가 판가름을 냈다고 본다. 축구도 마지막에는 정신이다. 기술이 아니다.
한국팀이 마음에 새겨야 할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외국기자들이 토고전을 보고 “한국이 2002년 때만 실력이 못한 것 같다”고 평한 것을 뼈아프게 느껴야 한다. 4년이 지났는데 그때보다 실력이 못하다는 말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파이팅 정신만 보여준다면 16강에 올라갈 수 있다고 본다.
clee@koreatimes.com
이철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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