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LA 통합교육구의 두 곳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담 치료할 때 교정에서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한 번은 잔디밭에 앉아서 편안한 자세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뭔가가 날아와 산산조각이 나면서 맛나게 먹고 있던 점심 샌드위치를 버리게 만들었다. 바로 뒤 건물의 2층 남학생 화장실에서 누군가가 변기 속의 나프탈렌을 꺼내서 휴지에 싸서 던진 것이 정확하게 필자의 도시락 통에 맞으면서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그 역겨운 냄새는 그 날 하루 종일 필자를 괴롭혔다.
또 한 번은 교정을 걷는데 누군가가 필자에게 “Hey, Bruce Lee!” 하면서 필자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중국말로 교실에서 소리쳐 왔다. 교실에 가까이 가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수업이 진행 중인데 선생님은 그런 소리를 치는 학생을 못 보았는지 수업은 그대로 진행중이었다. 필자는 교실로 찾아가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필자를 소개한 다음 나는 한국인이며 브루스 리는 중국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아무도 손을 드는 학생은 없었다. 필자는 중국인과 한국인의 차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사람은 가까이 있는 필자 사무실을 찾아와서 논의를 하자고 말하고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진 그 교실을 나왔다.
그런데 요즘 이 곳의 한국방송을 보노라면 한국의 유명 남자배우가 하는 고추장 광고가 자주 눈에 띈다.
필자는 이 선전을 보면서 우리 민족이 알게 모르게 지니고 있는 문화적 폐쇄성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비록 고의성은 없었을 것이나 우리 음식의 우수성을 표현하는 데는 어느 특정 민족의 음식을 앞에 놓고 비교하는 방법 말고도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탈리아나 독일에 여행을 가서 그 곳 TV에서 김치나 된장찌개를 앞에 놓고 구역질을 해대는 광고를 본다고 한 번 상상해 보면 우리는 그것을 재미있어 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인종 문제 전문가인 컬럼비아 대학의 데럴드 윙 수(Derald Wing Sue) 심리학 교수는 부모세대의 문화 및 인종 편견적 사고방식이 자녀들에게 그대로 물려내려 가게 된다고 한다. 필자에게 브루스 리라고 부른 학생도, 변기 속의 나프탈렌을 집어던진 학생의 의식 속에도 인종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어쩌면 부모세대로부터 물려받았을 편견적 사고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고추장을 이런 식으로 광고하는 저변에 다른 민족과 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부족과 편견이 담겨져 있다면 자녀들은 그런 부모의 가치관을 답습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스스로 조장하는 꼴이 되고 만다. 우리 자녀세대도 마찬가지의 문화적, 인종적 차별에서 오는 부당함을 경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이러한 폐쇄적이고 편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겠다.
윙 수 교수는 다인종 문화사회에서 소수민족들은 (1)주류문화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맹목적 종속기, (2)주류문화 및 타문화의 단점이 드러나면서 경험하는 혼란기, (3)자신의 문화에 대한 우수성을 현저히 주장하는 타문화 배척 및 저항기, (4)자신의 문화와 다른 문화를 동시에 이해하고자 하는 내적 관찰기, (5)마지막으로 모든 문화에 존재하는 고유성에 대한 인식의 깊이가 생겨나면서 나오는 타문화 수용의 완성기 등 다섯 단계를 거치게 된다고 한다.
윙 수 교수는 커뮤니티 지도자들의 다인종 문화에 대한 깊은 인식, 지속적인 교육을 통한 다인종 다문화 인식 능력 향상, 인종 편견적 사고에 대한 자각의식, 타인종에 대한 공평한 기회 제공 등을 주장하고 있다. 외형적으로 매우 비대해진 우리 커뮤니티는 지금 다인종 문화사회의 어디쯤 와 있을까?
(818)360-4987
rksohn@yahoo.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