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오피니언란에서 환자들이 어느 의사의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치와 모욕감을 느꼈다며 분노하는 글이 실린 것을 보고 같은 의사로서 유감과 자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가 될 때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나는 환자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항목이 가장 중요한 서약이라고 생각한다. 그 피해란 환자의 신체뿐 아니라 마음과 인격에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의사, 알아도 별로 중하게 여기지 않는 의사가 얼마나 될까 생각하게 된다.
그보다 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 그것도 아픈 몸을 벗어 보이며 도움을 호소하는 무방비 상태의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해서야 되겠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대부분의 의사는 이런 무례함에 해당이 안될 것으로 믿지만, 항상 소수의 예외가 전체의 물을 흐리게 하기 마련이다.
환자에게 대해서 뿐만 아니라 같은 일에 종사하는 동료의사들 간에도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환자가 무슨 이유로든 의사를 바꾸면 환자의 승인을 얻어 전 의사의 진료기록을 요청할 때가 있는데 이에 비협조적이거나 아예 무시하는 유감스러운 경우를 본다. 설사 밝히기 싫은 점이 있다 해도 그것은 요청하는 의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행여 소송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또 진료 의뢰나 2차 오피니언 차 동료 의사가 환자를 보냈으면 검진결과 보고를 보내는 것이 예의는 물론 철칙인데 이것 역시 안 하는 경우 당혹하고 실망스럽다.
새로 개업 또는 이사를 한 의사가 같은 건물과 근처 의사들에게 알리고 인사를 하는 것도 상식이었는데 요즘은 그것도 드물어진 것 같다.
동료의사에 대한 예의, 환자를 위해 으레 해야 할 기본적인 일들을 훨씬 더 잘 지키는 백인 의사들을 우리 한인 의사들도 잘 새겨 보고 배울 일이다.
정규 학과목에는 없는 병상 매너와 그 외 의사의 여러 예의범절을 의학공부와 수련기간에 교수와 선배들의 가르침과 모범에서 배우던 것이 현대 고도로 발달된 엄청 많은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설자리를 잃어 가는 게 아닌가 싶다.
또한 그 지식과 기술을 지체 없이 쓰고 보수를 받는 것은 이에 따르는 어떤 부정적인 영향이나 결과 보다 항상 우선 이고 정당화된다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인 듯 하다. 최신 최고의 치료가 어떤 환자에게는 더 나쁠 수가 있다는 것을 의식 또는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지식과 기술, 거기에 인술이 더해진 종전의 이상적이고 참된 의술에서 인술이 점점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예기다. 이대로 가다간 의술 컴퓨터로 장비된 로봇이 의사를 대치하는 때가 올까 겁난다.
요즘 공공기관은 물론 고객을 상대하는 많은 분야에서 사람은 없고 녹음기와 컴퓨터의 서비스 만 받으면서 좌절 아니면 분통을 참기 어려울 때가 많다.
아무리 물질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인간의 본능적 느낌과 감정 그리고 인격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사람의 아픈 몸과 마음을 매만지는 의사까지 이런 것을 경시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김용제 안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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