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작가들은 살아생전 가난에 쫓겨 힘들게 살며 글을 쓰다가 죽은 다음에야 유명해졌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좀 달랐다. 그는 살아 있을 때부터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부활’ 등으로 19세기 최고의 작가 위치에 올랐으며 남부럽지 않게 살수 있을 정도로 원고료 수입도 많았다. 돈 있고, 명예 있고, 존경받고, 훌륭한 집안의 여성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5,000에이커나 되는 땅에 집을 짓고 사는 톨스토이의 가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가정은 불행했다. 그는 말년에 가출하여 홈리스 피플처럼 떠돌아다니다 아스타포보라는 시골 역에서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다. 임종이 가까워오자 “소피아(부인)를 내 곁에 오지 못하게 해줘”라고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고 하니 그의 가정생활이 얼마나 불행했는가를 짐작케 한다. 그는 13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모두 다 어머니 편을 들어 아버지를 미워했고 오직 막내 딸 알렉산드라만이 그를 따랐다.
톨스토이의 가정이 이렇게 불행해진 원인은 무엇일까. 그의 가정생활 자체가 한편의 소설이다. 첫 실수는 부인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총각시절에 쓴 일기를 부인에게 읽어보라고 주었는데 거기에는 수많은 여성과의 성관계 심지어 악성 성병에 걸린 사실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톨스토이를 흠모하여 결혼한 소피아에게는 이 일기장이 평생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가정에서 군림했다. 자신의 가치관에 가족들이 따를 것을 요구했으며 모든 것을 통제했다. 그는 타락한 귀족들을 비난했으며 가족들의 사치를 극도로 억제했다. 빈민의 고통을 부자들이 분담해야 한다며 자신의 원고 수입과 재산도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고 말년에는 수도승에 가까운 내핍생활을 했다. 문제는 가족들에게도 그런 생활을 강요한 사실이다. 톨스토이의 비폭력 저항 원칙과 내핍 주장은 후일 간디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모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모든 자녀는 부모를 사랑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행한 가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도 가슴을 닫고 집안에 통풍이 안되면 사랑이 전달되지 않는다. 가정은 행복의 싹도 키우지만 닫혀지면 불행의 싹을 키우는 온상으로 변한다. 꽃이 피려면 물을 주고 바람이 통해야 하는데 통풍이 안 되면 잡초가 자라는 여건을 형성할 뿐이다. 사랑 없는 가정은 혼이 없는 육체나 마찬가지다. ‘행복한 가정’이라는 명저까지 낸 톨스토이가 불행한 가정을 꾸렸다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톨스토이의 불후의 명작 ‘안나 카레리나’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행복한 가정의 행복한 원인은 대개 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의 불행한 원인은 모두 다르다.”
그는 사랑의 정신세계에서는 성공한 작가였으나 사랑의 실천세계에서는 실패자였다. 소설 ‘부활’에서 네후르도프가 창녀 마스로바에게 보여준 그런 사랑을 그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베풀지 못했다. 부인 소피아는 그가 죽은 후 출판한 ‘소피아의 일기’에서 톨스토이와의 결혼생활을 상세히 그렸는데 “나는 톨스토이와 48년을 살고 13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회고했다.
“어머니다운 사람은 많으나 아버지다운 사람은 드물다”는 서양 격언은 톨스토이의 생애를 다시 한번 생각게 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톨스토이의 가정이 왜 불행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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