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다. 중년돌연사 1위, 남성 자살률 1위라는 통계만 보아도 이런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이 IMF 사태를 맞았던 시기에 나온 말이다.
비굴하지만 가족을 위해 나이 어린 상사에게 굽실거린다. 자신의 존재 같은 건 아예 잊었다. 오직 자식과 아내를 위해서다. 그런데도 찾아온 것은 ‘명퇴’다. 한창 일할 40대다, 세상을 좀 알게 된 50대다. 그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그 아픔을 가족도 이해해 주지 못한다. 돈 못 버는 아버지, 무능한 남편이라는 찬밥신세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나온 유행어가 고개 숙인 아버지였다.
사실 그렇지 않아도 그 존재가 점차 희미해져 가는 게 아버지다. 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한 설문조사 결과도 그 사실을 잘 알려준다.
‘아버지란 집에 오면 TV만 보는 사람이다’ ‘항상 술에 취해 자고 있는 사람이다’- 많은 어린이에게 비쳐진 아버지의 존재라고 한다.
이 말은 어른들의 방식으로 표현하면 자신의 삶의 무게도 지탱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은연중 아버지의 모습으로 어린아이들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그 아버지는 돈이나 벌어다 주는 데 존재의 의의가 있다. 아버지의 권위는 그러므로 오직 돈에 있다. 그 기능마저 정지될 때 아버지는 아버지란 존재는 어떻게 되나.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다. 자신의 아픔을 말할 수도 없다. 위로 받을 곳이 없다. 아이들은 어리고, 부모님은 연로하고…. 그 중압감에 못 이겨 쓰러진다. 돌연사, 자살이다.
아버지란 무엇인가. 새삼 와 닿는 질문이다. 50대, 40대 가장이 온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간 너무나 끔찍한 참극이 잇달아 벌어져서다. 죽음 앞이다. 한 가족의 비극 앞이다. 말이 여간 조심스런 게 아니다. 그러나 ‘왜’ 라는 질문은 떠나지 않는다. 왜.
비극을 맞은 이 가장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이 땅에 와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했다가 그만 수포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어려운 이민생활 속에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재산을 뜻하지 않게 날렸다.
그것이 비극의 원인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 말은 뭘까. 경제적 성공에만 모든 걸 걸었다는 것이 아닐까. 존재가 아닌 소유에만 가치를 두는 시대, 무한한 소비에서 정체성을 찾다가 그 정체성이 무너지자 결국은 온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그 비극이 결코 남의 일로만 보이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일 뿐 이 경제 절대주의에 매몰돼 허덕이는 게 너나 할 것 없는 이 땅의 아버지들의 모습이기도 하니까.
존재로서 아버지의 형상회복이 시급한 시점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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