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한 신혼부부와 방콕을 함께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호텔 커피샵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신랑이 고교동창 선배를 만나 서로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더니 그 선배를 우리 테이블에 데리고 와 부인에게 인사시켰다. 그는 “나 지난주에 재혼했어요”라고 말하면서 자랑스런 표정이었다. 그런데 이 선배라는 양반이 한다는 소리가 “이번에는 헤어지지 않을 거지? 와이프한테 좀 잘해”하는 충고 섞인 인사였다.
옆 사람들도 “어째 좀 이상한 인사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인의 얼굴이 불쾌감으로 하얗게 질리더니 “우리 방으로 돌아갑시다”하며 남편을 데리고 나가 버렸다. 그 후 두 사람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는 며칠 후 듣게 되었는데 부인이 울고불고 야단이 났었던 모양이다.
부인이 들고 나온 문제의 포인트는 남자의 과거다. “도대체 얼마나 과거가 복잡했으면 선배라는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느냐. 사실대로 털어놓지 않으면 여행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최후 통첩을 한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두 사람 사이 오해가 풀려 여행은 계속되었지만 보기에도 아슬아슬 했다.
한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시위 떠난 화살과 잃어버린 기회와 입에서 나온 말이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다. 말하는 것으로 상대방의 사람 됨됨이를 판단한다. 따라서 말 한마디로 천냥 빛을 갚을 수도 있지만 말 한마디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인간은 말을 자유스럽게 하기 때문에 동물보다 우위에 있지만 말을 잘못하면 동물보다 못한 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주먹 쓰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말도 폭력으로 쓰인다. 오히려 주먹으로 얻어맞으면 잠시 아플 뿐이지만 말로써 입은 마음의 상처는 두고두고 가슴을 찌른다.
왜 말이 문제를 일으키는가. 말에는 인간의 감정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대화한다는 것은 감정의 교환이다. 단순한 언어의 나열이 아니다. 아무 감정 표현이 없는 대화는 음악 없는 오페라나 마찬가지다.
대화에서는 똑같은 정보라도 받아들이는 자세와 해석이 다르다. 자신은 옳은 말이라고 생각되지만 상대방에게는 불쾌하게 받아 들여진다. 얼마 전 임명과정에서 적이 많아 애를 먹은 한국의 보건복지부장관 Y씨가 그런 스타일이다. 그는 툭하면 당내 불만자들에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해 미움을 받았었다.
말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방법 중의 하나는 말수를 좀 줄이는 것이다. 말이 많아지는 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개구리가 뱀에 잡아먹히는 것은 그 시끄러운 울음소리 때문이다. 꿩의 울음소리는 사냥꾼의 표적이 된다. 나무도 잎이 너무 많으면 열매가 적어진다. 말이 많은 사람은 진실성을 의심받게 되고 목소리가 큰 사람은 허풍쟁이처럼 보인다.
부부간에도 나이 먹을수록 말을 조심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여러 면에서 자격지심이 생기기 때문에 어떤 때는 솔직히 말한다는 것이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줄 때가 많다. 무뚝뚝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로 점잖게 지내는 것이 차라리 도움이 된다. 부부싸움의 90%는 잘못 뱉어진 말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말은 삶의 맛을 내는 소금이라야 한다. 다이어트 하는 것의 반만이라도 자신의 말에 신경을 쓴다면 우리가 살면서 겪는 불필요한 충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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