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주 유타이카 서부의 작은 마을 클린턴에 있는 해밀턴 칼리지는 자그마한 인문대학이다. 이 대학은 매년 북동부 지역 신문들에 광고를 낸다. 장학금 제도를 알리는 광고다. 장학금은 있는데 수여할 학생이 적어 장학금을 타가라고 광고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이를 보도했다. 장학금은 성적순이 아니다. 물론 해밀턴 칼리지 학생에 한한다. 그리고 해밀턴 칼리지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어찌됐든 장학금 수여자 선정에 가장 큰 기준은 ‘라스트 네임’(Last Name)이다. 이 라스트 네임은 레븐워스(Leavenworth). 복권 당첨번호처럼 라스트 네임이 맞아야 장학금을 탈 수 있다.
19-20세기 기부자의 유언에 따르다보니
기부자와 ‘라스트 네임’이 같아야만 OK
침례교 목사의 딸·유태인 고아출신 등 규정 엄격
25년간 2번, 10년간 한 번도 수여안한 기금도
‘잠자는 장학금’ 4,200여 대학에 적어도 하나씩
규정 완화위해 소송해도 비용 많이 들어 문제
바사 칼리지에서도 이름으로 장학금을 준다. 1800년도 거액을 기부한 캘빈 헌팅턴의 후손임을 입증하면 장학금을 탈 수 있다. 후손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미들 네임(Middle Name)을 캘빈 헌팅턴의 라스트 네임 ‘Huntington’으로 대체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말콤 R 스테이시 메모리얼 스칼라십은 UC샌디에고에서 항공엔지니어링 대학원 과정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가운데 유태인 고아출신에게만 수여된다. 전국적으로 매년 4,200여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한다. 그러나 거액의 장학금이 학생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온갖 규정에 묶여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레븐워스 장학금이 마지막으로 수여된 것은 1994년. 헌팅턴 펀드는 지난 25년간 단 2번 장학금을 수여했을 뿐이다. 결국 UC샌디에고 측은 스테이시 장학금의 엄격한 규정을 풀어달라고 법원에 소장을 제기했다. 지난 10년 간 단 한차례도 장학금을 수여한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레븐워스 장학금은 1873년 시러큐스 시장을 지내고 큰돈을 번 은행가 엘리아스 레븐워스의 기부로 만들어졌으며 예일, 해밀턴, 미시건 대학 등에 마련돼 있다. 해밀턴과 예일 대학에서는 132년 동안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지만 미시건 대학에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 이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없어 별 다른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학금이 이런 저런 규정 때문에 정작 필요한 학생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무덤 속에 있는 장학금 기부자들도 이상하게 여길 것이라고 한 장학재단 관계자는 말했다. 전국 대학마다 여러 가지 장학 프로그램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사장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장학금이 학생들에게 수여되지 못하는 이유는 기부자들이 19세기나 20세기 초에 기부금을 내면서 유언장이나 비공식 편지를 통해 규정을 언급했는데 이 규정이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어 침례교 목사의 딸에게 주는 장학금이 있는데 요즘 이런 학생을 구하는 게 그리 쉽지 않다. 문제는 기부자가 생존 시 규정을 바꾸면 간단하다. 그러나 기부자가 사망했을 경우엔 대학 측으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대학 측이 법원에 ‘하소연’을 하더라도 소송비용을 제하면 실제 장학금이 많이 축나기 때문에 실익이 적다.
그래서인지 레븐워스 장학기금의 규정을 바꾸려는 법정 투쟁은 현재 고려되지 않고 있다. 헌팅턴 장학기금도 바사 칼리지 당국이 사안을 법정으로 가져가기 전에는 수년 간 현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UC샌디에고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지난 10년간 기금이 불어 40만 달러가 됐다. 법원이 1987년 규정을 느슨하게 하도록 허락했다. 이젠 유태인이면 학부생이나 대학원생 가리지 않고, 전공도 따지지 않고 장학금 수혜자가 될 수 있다.
규정을 다소 느슨하게 한 장학금들도 더러 있다. 펜실베니아의 주니애타 칼리지는 왼손잡이 학생들에게 1,000달러의 장학금을 준다. 인디애나 볼 스테이트 대학은 창의적인 사고를 지닌 전기통신학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 또 키가 큰 사람들이나 키가 작은 사람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경우도 있다. 시카고의 로욜라 대학의 경우 가톨릭 가운데 라스트 네임이 졸프(Zolp)인 학생에게만 혜택이 가는 장학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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