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중동의 토후국 카타르를 방문했을 때 밤 12시가 넘어 갑자기 현지 TV 방송국을 방문해 카타르 왕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무바라크는 방송국을 둘러보고 난 후 “아니, 이 성냥갑 같은 작은 건물 안에서 그 많은 문제들이 일어난단 말이요?” 하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이 방송국이 바로 화제의 ‘알 자지라’ TV다.
아랍국가들이 알 자지라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알 자지라가 금기사항으로 되어 있는 왕족이나 대통령 비판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후유증이 엄청났으나 카타르의 세이크 하마드 국왕은 끝까지 굴하지 않고 알 자지라의 언론자유를 보호해 왔다. 카타르는 아랍에서 제일 먼저 언론검열을 철폐한 나라며 여성의 참정권을 시범보인 국가다. 세이크 하마드 국왕은 영국의 샌허스트 육군사관학교 유학생 출신이며 민주주의 실현이 그의 평생 꿈이다. 그는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려면 첫 단계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이와 같은 그의 통치철학은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증명되었다.
알 자지라 방송의 출현 이전에는 이집트의 ‘아랍의 소리’가 중동의 대표적인 목소리로 인정받았으나 알 자지라가 등장하자 통제된 언론과 통제되지 않은 언론은 너무나 비교가 되었다. 아랍의 모든 언론은 왕이나 대통령의 통제를 받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부 눈치 살피지 않고 무차별하게 사실 보도하는 통쾌한 언론기관이 등장한 것이다. 아랍인들에게는 지금 알 자지라를 시청하는 것처럼 스릴이 없다.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 받은 정치범이 돌연 TV에 나와 용감하게 왕정의 부패를 비난한다. 알제리에서는 해외망명 야당인사가 알 자지라에서 알제리 대통령을 비난하자 이 방송을 못 듣게 하기 위해 시내 전체를 정전시키는 조치를 서슴지 않았을 정도다.
카타르는 지금까지 작은 석유왕국으로만 알려져 왔었다. 국제적인 외교무대에서도 발언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이크 하마드 국왕이 나타나면 아랍국 지도자들이 달려가 포옹한다. 알 자지라 TV를 갖고 있는 왕이기 때문이다. 카타르의 알 자지라가 아니라 알 자지라의 카타르로 이미지가 굳어져 가고 있다.
원래 알 자지라는 로마에 있는 영국 BBC계 아랍 텔리비전이었으나 재정난으로 문을 닫자 카타르의 세이크 하마드 왕이 알 자지라 방송국을 세운 다음 BBC 아랍 TV의 기자들을 전원 스카우트한 것이다. 따라서 알 자지라의 보도 자세에는 BBC의 전통이 그대로 흐르고 있다.
알 자지라는 빈 라덴 때문에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미국을 다시 공격하겠다”는 지난주의 성명까지 합치면 알 자지라가 빈 라덴의 테입을 4번째 특종 보도한 셈이다. 알 자지라가 빈 라덴의 앞잡이 언론기관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단지 아랍인의 입장에서 중동사태를 보도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고 아랍 정치의 부패 개혁과 민주주의 실현이 이들의 목표다.
아랍국가를 여행해 보면 빈민들이 사는 판자촌에도 인공위성 TV 안테나가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갓 쓰고 양복차림 한 것처럼 어색해 보인다. 이들이 무리해서 비싼 인공위성 TV를 시청하는 것은 바로 알 자지라의 뉴스를 보기 위해서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아랍인들의 75%가 알 자지라 때문에 인공위성 TV를 보고 있다.
중동의 민주화는 미국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랍인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정도인 것이고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알 자지라 방송이다.
이 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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