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처럼 묘한 동물이 없다. 따르는 것 하나만으로 사랑을 받는다. 개가 인간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변함없는 충성심 때문이다. 우선 불만이 없다. 복종에도 조건이 없고 이해타산이 깔린 얄팍한 상하관계가 아니다. 주인이 잘 살든 못 살든, 도둑이든 경찰이든 차별 없이 따른다. 홈리스 피플들도 개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가.
그러나 사랑을 받는 개와 사랑을 받지 못하는 개는 성격 구조에서 차이가 있다. 네팔의 카트만두에 가면 거리에 주인 없는 개들이 먹을 것을 찾아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는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이 개들의 눈동자가 심상치 않다. 눈빛이 다정스럽지가 않고 약간 정신나간 듯 한 데다 사나운 야성을 풍긴다. 광견병이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카트만두에서는 관광객들에게 개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을 주의사항 첫 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이에 비해 파리에는 아침만 되면 개들을 산보시키기 위해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사람이 산보하는 것이 아니다. 개를 운동시키기 위해 사람이 개를 수행하고 다니는 모양새다. 개똥만을 치우는 청소부를 시청이 따로 고용할 정도라고 하니 파리쟝들의 개 사랑이 얼마나 유별난가 짐작이 간다.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다 하여 한국상품 배척운동까지 전개한 왕년의 육체파 여배우 브리짓 발도우도 파리에 산다.
개도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능력이 달라진다. 소설 ‘플란더스의 개’에 등장하는 파트라슈라는 개가 그 좋은 예다. 파트라슈는 술 주정꾼 주인에게 바보취급을 당하며 매만 맞다가 거리에 버려진다. 그러나 가난한 어느 소년이 주워서 정성껏 키우자 놀랄 만한 잠재능력을 발휘하며 주인을 위해 봉사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소년이 얼어죽게 되자 함께 운명을 같이할 정도로 충성심을 보인다.
인간은 왜 개를 사랑할까.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고독하기 때문이다. 특히 독신주의자와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요즘 어떤 사람들에게는 개가 애완동물이 아니라 가족 서열에까지 올라가 있다. 장례를 지내주는 것은 물론이고 유산까지도 남겨 준다.
미국에는 개 묘지가 전국에 600개나 산재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번 월드컵 축구대회 때 한국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 당국이 애견 화장장을 허가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눈가림수고 보신탕의 인기는 여전하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있지만 그게 그냥 굴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팔자 누리는데는 조건 없는 충성심, 일방적인 복종 자세를 상대방에 보여야 한다. 만약 직장에서 그런 자세를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미워할 보스가 있을까.
그러나 여기에는 필수조건이 따른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아야 하고 욕먹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 있을 만큼 피부가 두꺼워야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자존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존심은 양심과 정의가 솟아나는 원천이기도 하다.
개는 자존심이 없다. ‘개 팔자가 상팔자’인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우선 자존심부터 버릴 일이다. 자존심 버리고 개처럼 대우받고 살 것인가, 자존심 지키고 고민스럽게 살 것인가. 개띠인 병술년에 한번 생각해 볼 만한 숙제다.
이 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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