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때쯤 등장하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올해는 황우석 쇼크에 영향을 받아 빛을 잃은 느낌이다. 2005년은 ‘황우석의 해’였다. 치료줄기세포 성공 뉴스에 부시까지 놀라고, 스너피 복제가 발표되고, 한국에 줄기세포 허브를 세우는 등 황우석은 세계의 뉴스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뿐만 아니다. 황 교수의 고향 생가보존 계획이 추진되는가 하면 그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우표가 발행되고, 최고 과학자상이 수여되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게재되었다. 경기도에는 황우석 바이오센터가 세워지고, 국정원으로부터 신변보호까지 받는 파격적인 대우가 주어졌다. 한국 현대사에서 황우석처럼 영웅대접을 받은 예가 없다. 심지어 정부에서는 암암리에 황우석 노벨상 후원회까지 추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두환 집권 시절 후계자가 누가 될지 분명치 않아 기자들이 궁금해했다. 그때 전씨 측근들은 “후계자는 6개월이면 키울 수 있다. 걱정할 것 없다”는 말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물으면 “신문방송이 띄워 주고 집권세력이 밀면 하루아침에 영웅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고는 했었다. 기자들은 그때 반신반의했었다. 어떻게 국민적 영웅이 6개월만에 탄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황우석 교수가 “영웅은 6개월만에 제조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언론이 북 치고 장구 치고, 대통령이 밀면 국민의 존경이 한 몸에 쏠려 순식간에 영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황우석 케이스다. 더구나 광기에 가까운 네티즌들의 지지까지 업는 날엔 가공할 만한 힘까지 지니게 된다는 것도 보여 주었다.
그 국민적 영웅이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것을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황우석 파동은 한국인들의 모든 것을 보여준 하나의 거울이다. 희극적 비극인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뼈아픈 교훈이 있다. 그것은 한국인의 성격을 논할 때 ‘아킬레스의 건’은 역시 정직성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인은 부지런해” “한국인은 머리가 좋고 악착같지” “한국인은 정이 있는 사람들이야” 등등 좋은 표현이 많지만 정직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와 같은 칭찬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한국인이 성공하는 길은 정직”이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한 이유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한 사건이다. 앞으로는 초등학교 교과서가 국민적 영웅이 어린 시절 얼마나 고생하다가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정직 없는 성공은 사상누각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황우석을 본받아라”고 큰소리 친 어른들이 지금은 얼굴을 들 수 없게 되었다.
황우석 교수의 자서전을 보면 “하늘을 놀라게 한다”가 그의 사무실 표어로 되어 있다. 그것은 성공의 열매에 초점이 맞추어진 내용이다. 과학자는 과정의 정직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황 교수는 등한히 했던 것 같다. 성공만을 목표로 삼으면 무리와 과욕이 따르는 법이다. 여기서 자칫하면 정직성을 도외시하게 되어 파멸의 샛길로 빠지게 된다.
이번 파동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지닌 황우석 같은 인물이 국민적 훈련에서 정직을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오히려 부정직을 시범 보였다는 점이다. 이래저래 그의 부정직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코리안의 이미지가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우리가 배운 것은 정직이야말로 변하지 않는 자산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
clee@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