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자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어떤 식으로 할까. 보통 사람들은 집 식구들 선물 샤핑만도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미국의 대기업 회장이나 사장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까는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미국 부자’는 억만장자 정도 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몇년전 석유부자들이 좋아한다는 달라스의 ‘니만 마커스’ 백화점을 찾아간 적이 있다. 달라스 니만 마커스에는 텍사스 부자들의 연말 샤핑을 전문으로 도와주는 ‘크리스마스 기프트 스페셜리스트’가 있다. 재벌회장이나 사장들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백화점에 올 시간이 없을 뿐더러 그 많은 친구, 친척, 간부 직원들의 선물을 샤핑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12월이 되면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선물 전문가를 자기 사무실로 불러 대상자 명단을 준 다음 예산범위를 정 준다.
선물 리스트를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다. 부자라는 사람이 수표에 사인해서 홱 던지는 식이 아니라 자기가 선물하는 상대방의 취미와 기호를 하나하나 정성 들여 설명한다. 내가 만난 스페셜리스트는 30대 중반의 주디라는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고객과의 인터뷰에서 얻은 자료를 기초로 선물의 종류를 정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리스트를 만들어 고객에게 다시 찾아가 OK를 받은 다음 샤핑을 집행한다는 것이다.
12월은 크리스마스 카드와 선물교환이 트래픽을 이루는 시즌이다. 남에게 선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이다.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남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재포장해 주는 것 같은 선물은 안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술을 입에 대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위스키를 한병 보낸다거나 어른들에게 아이들 용품을 선물하는 것 등은 잘못하면 재고정리를 하기 위한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받는 측에서 시큰둥해 한다면 이미 그것은 선물이 아니다.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도 마찬가지다. 정성이 안담겨 있는 카드는 불쾌감을 줄 때가 있다. 이름이 틀리거나 영문 스펠링이 잘못되면 실례다. 영문 스펠링을 정확히 모르면 한글로 쓰는 것이 무난하다. 오랜만에 소식을 접해 반가워서 봉투를 뜯어보면 인쇄된 글자만 있고 안부소식이 전혀 없다. 한 두마디 인사가 있어야 되는 사이로 생각하는데 아무 말도 없을 때는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다. 얄밉고 무성의하게 느껴진다. 또 어떤 사람은 뭐라고 여비서를 시켜 쓰긴 했는데 천편일률적 내용이다.
대기업의 회장이나 정치인들의 카드가 인쇄된 인사로만 끝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별로 바쁘지도 않은 사람이 카드를 무더기로 인쇄하여 뿌리는 것은 촌스러워 보인다. 선물이나 인사장의 본질은 “내가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따뜻한 배려와 정성이 담겨 있어야 향기가 풍긴다. 골프 매너가 나쁘면 사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에 실망을 안겨주게 되는 것처럼 정성이 결여된 연말 선물이나 카드는 실례가 되는 경우가 있다.
12월은 한해를 돌아보는 달이라는 점에서 시간의 흐름이 피부에 와 닿는 시즌이다. 파티니 동창회니 모임이 많지만 이런 즐거움은 하나의 정적인 행복감에 불과하다. 파티에 많이 참석할수록 마음 한구석은 허전해진다. 따뜻한 말,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격려 한마디가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하는 계절이 12월이다.
이 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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