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나라] 뮤비·노래·단편영화 등 형태 다양화…’공짜 문화상품’ 자처 전방위 마케팅
광고의 정체성이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새로운 정의를 시도한 에이스침대 CF 마냥 광고도 이제 전통적인 틀거리를 거부한 채 영역의 확대, 혹은 파괴를 가열차게 시도하고 있다.
영화 같은 광고, 뮤직비디오 같은 광고 등 타 장르의 형식을 일부 흡수하는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 장르 자체를 표방하는 사례가 최근 들어 부쩍 많아졌다. 애니콜의 ‘애니모션’에 이은 ‘애니클럽’캠페인을 비롯해 KTF의 도시락 CF, KT 기업이미지 광고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아마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넌 누구냐?’라고 물으면 ‘광고에요’라고 즉답을 내놓기 힘들 것이다.
소비자의 지갑을 노리는 광고의 상업적인 냄새를 걷어낸 채 친밀한 오락거리로 다가가겠다는 이들 광고는 저마다 ‘공짜 엔터테인먼트 작품’을 자처한다.
제품을 PPL(상품배치)의 방식으로 녹여낸 뮤직비디오이자 드라마에다 자체 음악까지 따로 만들어 방대한 종합엔터테인먼트 상품으로 탄생한 애니콜의 캠페인 시리즈는 광고의 정체성 파괴를 선도한 예다. 현재 ‘애니클럽’이란 타이틀 아래 전방위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는 이 캠페인은 캐스팅, 제작진 등의 면면에서도 여느 블록버스터 영화 부럽지 않다.
영화 드라마 등에서 특급캐스팅의 명단에 올라있는 이효리 권상우 에릭 등이 한꺼번에 등장하고, 박근태(작곡가), 차은택(뮤직비디오 감독) 등이 광고 이상의 무엇을 만드는 데 가세하고 있다. 실제로 애니클럽 송은 다른 가요와 다운로드 등의 순위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종의 독립 음악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향유되고 있다.
KTF의 음악포털사이트 ‘도시락’ CF 역시 광고 시간대에 뮤직비디오 한편이 배치된 듯한 인상으로 기존의 광고문법을 깨고 있다. 5인조 밴드 버즈의 민경훈이 프라하를 배경으로 촬영한 이 CF는 버즈의 신곡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 뮤직비디오라고 봐도 무방하다.
마지막에 도시락이라는 키워드만 던지는 이 광고는 인터넷에서는 12분에 걸친 뮤직드라마, 버즈의 셀프카메라 영상 등을 소개하며 다채로운 엔터테인먼트 상품의 채널 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KT 기업이미지 광고는 ‘15초짜리 초단편 영화’를 표방한다. 제목은 ‘Life is wonderful’. 스크린의 화면 비율로 영상을 배치하고, 15초라는 시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제목, 배우 이름 등을 소개하는 오프닝 크레딧의 형식까지 꼼꼼하게 갖췄다.
이 광고는 메신저로 또래의 여자친구한테 결혼하겠다는 프로포즈의 말을 건넨 여섯살 배기 남아의 얘기, 혼자 떠나 여행길에서 기자를 보며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는 남자친구의 에피소드 등을 통해 영화 제목으로 치환한 기업 슬로건을 따뜻하게 전한다.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함축해 소비자를 설득하는 15초의 마술이 진정한 광고의 아이덴터티라고 믿는 이에게는 문어발식으로 타 장르에 발을 걸친 이들 광고의 시도가 본류를 흐리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광고의 엔터테인먼트화를 통해 소비자의 바로 옆에서 호흡하고 싶다는 열망을 막을 수는 없어 보인다.
단, 중요한 것은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노골적인 홍보를 꼭꼭 숨기고 있지만 이들도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의 방어기제를 자연스럽게 해제해 상업적인 목표를 광범위하게 주입하려 하는, 어쩔 수 없는 광고라는 사실이다.
조재원 기자 mii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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