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은행들의 고객 유치전이 건전한 수준을 넘어 ‘과당 경쟁’이라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기사내 특정사실과 관련없음. <신효섭 기자>
스카웃 간부 고객명단 빼가기도
영토 확장 대결과 함께 한인 은행들의 상호 무한경쟁 양상이 가장 심한 부분의 하나는 고객 유치전에서 나타나고 있다. 은행 비즈니스에서 보다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려는 노력과 경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한인 은행들의 고객 유치 노력이 건전한 수준을 넘어 ‘과당 경쟁’이 되고 있는 것은 고객 확보의 주된 무기로 단순 ‘이자율’ 경쟁을 내세우고 있다는 데 있다는 지적이 많다.
터무니없는 이자율 제시
성사직전 대출 깨기 일쑤
“얼마전 상업용 부동산 구입을 위해 대출을 하려는 고객과 상담을 통해 적정한 선에서 거의 딜을 마쳤는데 다른 은행에서 접근해 이자율을 터무니없이 제시하는 바람에 결국 딜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변동 금리의 경우 아무리 낮아도 월스트릿 프라임 플러스 1% 정도가 되기 마련인데 더구나 고정 대출로 7%까지 준다고 했다니 이건 너무 심하다 싶었죠”
한 은행 지점 대출 관계자의 말로 이자율 깎기를 통한 고객 쟁탈전의 실태를 잘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다.
예금 고객 유치를 위한 금리 경쟁은 일부 은행에서 이자율을 파격적으로 높여 경쟁에 나서면 다른 은행에서 다시 이보다 높은 수준을 제시해 타 은행 예금주들을 끌어오는 식의 무한경쟁 양상이 되어왔다.
올초부터 본격 불붙기 시작한 한인 은행들의 예금 금리 전쟁은 각 은행들이 프라임 금리와 연동되는 고금리 CD를 경쟁적으로 선보이면서 지금은 4.5% 이상되는 CD 이자율을 쉽게 볼 수 있게 됐고 얼마전에는 연이율이 최고 5.25%까지 올라간 상품이 나오기까지 했다. 12일 현재 CD의 전국 평균 이자율이 만기 기한에 따라 3.2%∼3.8% 수준임을 감안하면 한인 은행들의 이자율 인플레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은행들끼리의 신경전 또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올해초 한 은행에서 파격적인 이자율의 CD 상품을 내놓고 대대적 홍보에 나서자 규모가 비슷한 경쟁 은행의 행장이 상대 행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런 식으로 올리면 다른 은행은 어떻게 하느냐’며 강력히 항의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항의했던 은행도 결국 얼마 뒤 이자율을 더 높인 CD 상품을 출시해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이같은 금리 경쟁이 제살 깎아먹기라는 지적 속에 역마진까지 우려되는 상황이 되자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식으로 해서 우리 월급 받을 돈이 남겠냐’는 자조적인 농담도 들려오고 있다.
실제로 한인 은행들은 지난 1년여간 금리가 2.75%나 인상되면서 이자 수입이 크게 늘어났지만, 치열한 금리 경쟁의 여파로 예금 고객들에게 지불하는 이자 비용 증가율(87%)이 이자 수입 증가율(61%)을 앞질렀다.
한인 은행들의 고객 확보 경쟁은 또 ‘고객 유치’를 넘어 ‘고객 빼앗아오기’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영업 담당이나 간부 직원이 스카웃 등을 통해 다른 은행으로 옮기는 경우 고객 빼내가기가 횡행하고 있고 이에 대한 다른 은행들의 반발도 심하다.
한 은행 지점 관계자는 “마케팅 담당자가 다른 은행으로 옮겨가면서 아예 고객 명단을 가져가 CD나 크레딧 라인 등의 만기가 끝나는 고객만을 골라 접촉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다른 은행의 전무급 및 지점장급 간부들을 대거 스카웃한 한 은행은 직원을 뺏긴 은행으로부터 고객 이동을 둘러싼 경고 서한을 받기도 했다.
은행들의 경쟁 실태가 이렇다보니 각 은행들의 영업 담당 간부들과 현장 실무자들은 ‘과당 경쟁 때문에 정말 일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한 은행 본점 마케팅 담당 책임자는 “요즘은 아예 고객들이 먼저 ‘다른 은행에서는 이 정도 이자를 준다는데...’ 하면서 요구를 해오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사실 시중에 나도는 파격적인 대출 금리 수준은 크레딧이나 자산 등 면에서 최우량인 극소수 고객들이나 해당될 수 있는 것인데 자격이 안되는 고객이 억지를 부릴 때는 정말 힘들다”고 털어놨다.
이는 결국 은행들의 성장 우선전략이 낳은 자업자득의 결과로 향후 금리 등 여건 변화에 따라 한인 은행들의 체질 악화를 가져올 우려도 있다고 일부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한 은행 재무 담당 관계자는 “지난 1년여간 한인 은행들이 금리 인상의 덕을 본 것은 사실이지만 고성장 추구 분위기 속에 금리 경쟁 등으로 이자 비용이 크게 높아졌다”며 “금리 상황이 역전될 경우 은행 성장 여건이 악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종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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