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계층 상대 ‘특별 관리’… 샤핑땐 VIP급 안내도
캘리포니아주 산타로사에 있는 ‘베스트 바이’ 매니저 지닌 브라이언트는 입구에 서서 들어오는 손님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멋있는 흰 셔츠에 꽃무늬 바지를 입은 금발의 중년 여성은 들어서면서 핸드백에서 종이를 꺼낸다. 그 종이를 한번 보고, 매장 배치도를 위 아래로 살피고 있는 그녀에게 브라이언트가 재빨리 다가간다.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보아 그 손님은 ‘질’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베스트바이, ‘큰 손 고객’ 전담 직원 배치
의류점들, 상습 반품 손님은 아예 입장거절도
베스트바이에서 통하는 암호명 ‘질’은 한 가족의 샤핑을 도맡아 하지만 전자제품 매장은 기피하는 ‘사커 맘’ 타입의 여성을 지칭한다. 교육 수준도 높아 매사에 자신 있지만 전자제품 매장 같은 곳에 오면 공연히 주눅이 드는 이들이 록스타처럼 환영받는 분위기로 매장을 변화시키고 있는 베스트 바이는 ‘질’이 비오는 날 자동차에서 매장까지 오가는 길에 핑크색 우산을 받쳐 주도록 직원들을 훈련시켰으며, 매장 안에는 ‘질’이 아이들과 함께 하이텍 제품들을 가지고 노는 장면을 찍은 대형 포스터들을 붙여 친근감을 주고 있다.
이제까지 미국의 대형 소매 체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곳중 하나였다. 소득이나 인종, 종교,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샤핑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는데, 기업마다 컴퓨터 데이타베이스에 고객들에 대한 정보가 쌓여가면서 변화가 일고 있다. 어떤 종류의 고객이 가장 돈을 잘 쓰고, 어떤 종류의 고객이 가장 돈을 안쓰는지를 분석해 낸 기업들이 그에 맞춰 판매 정책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의류체인 ‘익스프레스’는 습관적으로 반품하는 손님들의 반환 요구를 거절한다. ‘파일린즈 베이스먼트’는 한술 더떠서 반품과 불만이 과다한 몇몇 손님을 입장도 시키지 않는다. 아직 컴퓨터 프로그램이 어떤 고객의 진정한 가치를 판단할 정도로 완벽하지 않고, 그 때문에 좋은 고객을 끌어 들일 수도 있지만 쫓아버릴 가능성도 있어 논란이 있는데도 베스트바이의 CEO 브래드베리 앤더슨은 회사가 고객을 대하는 방식을 과감히 바꾼 것이다. 콜럼비아대 교수 래리 셀든의 책 ‘천사 고객과 악마 고객’에 영향받은 그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고객들은 메일링 리스트에서 빼 버리고, 반품정책도 강화시켰다.
아울러 손님들을 특성별로 분류하여 끌어 들이기 위해 각각 암호명까지 부여했다. ‘버즈’는 신기술에 열광하는 젊은층, ‘배리’는 부유한 전문직 종사자, ‘레이’는 충실한 가장, ‘질’은 주부를 지칭한다.
구매기록과 그 지역의 인구통계, 고객및 목표 그룹에 대한 조사 결과를 분석하여 베스트바이는 작년 가을부터 캘리포니아주내 67개 매장을 고객 특성에 맞도록 바꾸기 시작했다. 앞으로 3년사이에 전국 660개 매장이 전부 그렇게 바뀔 예정인데 ‘배리’를 위해 꾸며지는 워싱턴 지역 3개 매장에는 술 한잔을 들고, 시가를 피우며, 대형 스크린과 고급 음향기기에 연결된 TV 보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가죽 소파가 군데 군데 놓여 있다.
‘질’을 위해 꾸며진 산타 로사의 120번 매장은 입구에 분홍, 빨강, 하양색 풍선이 매달려 있고 TV들은 저마다 가족용 만화영화 ‘인크레더블스’를 틀고 있다. 다른 곳들보다 더 많은 종류의 가전제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들인 ‘헬로 키티’ ‘바비’ ‘스폰지밥 스퀘어팬츠’를 앞세운 전자제품들이 가득 차 있다. 엄마와 아이들이 하이텍 기기들을 가지고 놀 수 있도록 꾸며진 구석구석은 마치 기숙사나 오락실 같아 보인다. ‘질’을 위한 급행 계산대까지 따로 마련해 놓았다. 매장 전체를 흐르는 음악은 다른 곳보다 한 눈금 정도 조용하고, 선곡도 제임스 테일러나 머라이어 캐리등 ‘질’이 좋아할만한 가수의 노래로 한다.
<김은희 객원기자>
그러면 도대체 ‘질’은 누구일까? 간단히 정리하자면 질은 매우 영리하고 부유하며 집안의 CEO이자 결정권을 가진 사람으로 그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다. 전자제품 매장에는 일년에 두어번 들릴 뿐이지만 한번에 쓰는 돈은 상당액인 것으로 ‘베스트바이’ 데이타에 나와 있다.
지난 10월 새로 디자인한 이후 산타로사 매장에서 여성 고객들의 지출은 30%가 증가했다. 그처럼 특정 고객층 중심으로 변환된 매장의 매출은 전국적으로도 지난 2.4분기에 전년 대비 8.4%가 신장했다고 베스트바이는 밝혔다.
베스트바이 대변인 수잔 부시는 매장을 바꾸는데 있어 상품이 차지하는 것은 20% 정도고 80%는 고객들의 경험이라고 말한다. 산타로사의 경우 직원 210명중 12명이 ‘질’ 담당으로 교육받았다. 파랑색 셔츠를 입은 일반 직원들과 달리 패스텔 톤의 셔츠를 입은 이들은 고객에게는 ‘샤핑 도우미’로 통한다. 매장 한가운데 보라색 조화와 봉제인형들로 장식된 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매니저의 신호에 따라 재빨리 ‘질’ 타입의 손님에게 따라 붙어 안내하는 것이다.
금발 여성이 핸드백에서 꺼낸 종이에는 “플레이스테이션 2, 찰리 앤드 더 초컬릿 팩토리”라고 쓰여 있다. 매니저에게서 이 손님을 인계받은 ‘질’ 전담직원 제레미 허먼(18)은 게임들이 진열된 곳으로 가 상자를 빼들고 급행계산대로 안내하며 달라진 회사 시책을 설명하고 자신의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가 쓰인 명함을 건넨다. 이제까지 베스트바이에는 남편을 보내온 금발 여성은 앞으로는 자기가 와야 되겠다고 말하며 문을 나섰다.
<김은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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