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면 친구 잃는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왜냐하면 돈 벌었다고 소문나면 여기저기서 도와달라는 부탁이 들어오고 형편이 어려운 친척들은 손을 벌리게 된다. 돈 번 사람은 사람 기피증이 생기게 되고 누가 자신에게 가까이 오면 “저 사람 나한테 돈 꿔달라고 하는 것 아닌가” 싶어 점점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다.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벌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친구나 친척이 문제가 아니다. 후계자 승계를 둘러싸고 아내와 자식, 형제까지 문제가 된다. 당장 신문왕국을 이루고 있는 루퍼트 머독을 보자. 70세 넘은 그가 동업자 겸 아내인 안나와 이혼하고 예일 출신의 중국계 미녀 웬디 덩과 결혼해 화제를 뿌린 것이 바로 엊그제의 일이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 고령의 머독이 최근 새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둘이나 낳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머독이 새로 얻은 자식들을 트러스티(재산신탁)에 넣으려고 하자 맏아들이 반발해 머독 그룹의 사장직을 다 던져버리고 뛰쳐나간 것이다. 머독 왕국은 이제 전처와 후처와의 싸움에 말려들게 되었다. 전처 안나도 언론인 출신이고 후처 웬디도 홍콩의 머독계 신문 간부 출신이라 싸움이 만만치가 않다.
재벌이 장가를 두 번 가면 어떻게 되는가는 미국의 경우 석유재벌인 폴 게티와 이삿짐센터인 U-Haul의 레너드 숀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폴 게티는 다섯 번 결혼해 어머니가 서로 다른 5남을 두었는데 이들은 재산상속을 둘러싸고 아버지와 싸우다가 정신적인 고민을 이기지 못해 결국 자살하거나 마약중독자가 되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이 가운데 손자 한 명은 이탈리아에서 납치되었으나 폴 게티가 인질금을 내놓지 않아 귀까지 잘리고 석방된 후 이 충격으로 마약을 시작해 폐인이 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U-Haul의 레너드 숀도 네 번 결혼해 12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재산 분배로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나중에는 아버지가 회사에서 쫓겨나고 회사도 와해되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다.
폴 게티와 레너드 숀이 결정적으로 실수한 것은 비즈니스에 너무 열중해 자식 교육을 등한시한 점이다. 게티는 자식들을 1년에 한번씩 면담형식으로 만났고 숀은 전국 지점을 돌아다니느라 아이들의 생일에 한번도 참석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내가 너희들에게 못해 준 것 뭐 있어? 해달라는 것 다 해 줬잖아.” 이런 자세로 자식을 키운 것이 결국 자식을 괴물로 만드는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무능한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 없다. 제약회사 유한양행의 유일한 회장이 항상 입버릇처럼 이야기한 것이 “자식에게 재산 물려주면 자식 잃고 돈 잃는다”였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자식들에게 남기지 않고 전부 사원과 재단에 희사하고 세상을 떠났다. 요즘 두산재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형제 싸움도 비극이다. 회장이 물러나면서 자기 회사의 탈세를 조사해 달라고 떠들고 있으니 보기에 딱하다. 원래 두산은 일제시대 ‘박승직상점’이라는 유명한 포목상이었는데 ‘박가분’이라는 화장용 분으로 일어나 OB맥주와 코카콜라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선대에서는 화목을 중시해 가족끼리 동업하면 의리 상한다고 형제들의 기업 참여도 배제했었다. 그러나 3대째 와서 결국 창업주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1대 넘기는 동업 없고 3대 넘기는 부자 없다”는 옛날 속담이 돋보이는 요즘이다.


이철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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