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LA를 떠나 런던으로 향하던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여객기가 탑승객 중 수상한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보스턴 비행장에 비상 착륙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수상한 혐의를 받은 승객은 3명의 파키스탄인들로 조사 결과 테러와는 아무 관계없는 것으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승객들이 굉장히 놀랐던 모양이다.
이들은 왜 의심을 받았을까.
무슬림처럼 보이고, 자기네들끼리 숙덕대며 기내를 자주 왔다갔다해 의심을 산 데다 앉아있으라는 승무원의 지시에 “네가 뭔데”하는 식으로 대든 모양이다. 몇 달 전 런던에서 카이로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겪은 일이다. 승객 중 한 미국인이 아랍인의 기질에 대해 옆 사람과 낄낄대며 한마디하자 이를 뒷좌석에서 엿들은 아랍인이 흥분해 소리 지르기 시작하는데 꼭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았다. 승무원이 조용히 하라고 제지했지만 더 길길이 뛰며 “너도 똑같은 족속들이야”라고 욕을 퍼부어 댔다. 승객들은 가는 동안 내내 불안해했다. 카이로에 도착하자마자 이집트 경찰이 올라오더니 그 아랍승객을 수갑 채워 연행해 가긴 했지만 미국인들에 대한 아랍인들의 증오심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었다.
사회에 증오가 번지면 사람들의 판단이 흐려진다. 런던 경찰이 테러용의자로 오인하여 사살한 브라질 청년이 백인이었다면 머리에 5발의 총격을 가하는 끔찍한 사살이 가능했을까. 그가 아랍인처럼 구릿빛 피부를 지니고 여름에 두꺼운 재킷을 걸치고 있은 데다 경찰의 정지명령을 어기고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 비극의 결정적인 이유다.
이 사건에서 내가 한 가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메네제스’라는 브라질 청년이 자신은 테러와 관계없는 데도 왜 경찰의 심문에 응하지 않고 도망쳤을까 하는 점이었는데 오늘 아침 가족들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서야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메네제스’는 비자기간이 끊어져 경찰에 걸리면 추방될까 봐 겁을 먹은 것이라고 한다.
원래 영국 경찰은 무장을 하지 않고 거리를 순찰한다. 조금만 이상하면 권총을 뽑아드는 미국 경찰과는 전혀 매너가 다르다. 지난 7년 동안 영국 전역에서 경찰관이 총을 발사한 케이스는 20건에 불과하며 경찰에 의해 사살된 용의자는 7명뿐이다. 1년에 한 명 정도 경찰 총에 숨졌다는 이야기니까 경찰이 총 쏘는 것을 극히 자제하고 있는 나라다. 그 영국에서 요즘 경찰이 어깨에 반자동 소총을 메고 거리를 누비고 있고, 도망가다 쓰러진 테러 혐의자의 머리에 5발씩이나 총격을 가했다는 것은 쇼킹한 일이다. 전통 있는 영국 경찰도 사회적인 패닉현상에 말려들어 판단력을 잃고 있다.
런던테러 사건 때문에 미국에서도 지하철 검문검색이 강화되고 있다. 모든 사람의 백을 뒤져볼 수는 없고 경찰의 판단에 맡겨 그때그때 검문하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 인종차별의 함정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당국자들은 피부색깔과는 관계없이 검문검색이 실시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아랍인이 백팩을 메고 다니면 특히 수상하게 여기는 것이 최근의 사회 분위기다. 테러로 인해 미국인과 영국인들이 피해를 입고 있지만 가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과 영국에 살고 있는 선의의 아랍인들이다. 미국 역사에서 중국계와 일본계가 당했던 ‘황색고통’처럼 바야흐로 ‘구릿빛 수난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이 사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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