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여행하노라면 여러 번 놀라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전기사정이다. 국제공항인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보면 건물복도가 불이 꺼져 있는 것에 제일 처음 놀란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전등이 없어 컴컴한 속에서 일을 봐야 한다. 불이 나간 인천공항을 상상하면 평양공항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호텔 복도에도 낮에는 불이 꺼져 있다. 기프트 샵도 어두워 물건들이 시들해 보인다. 저녁에는 불이 들어오지만 호텔 복도 양쪽에만 형광등이 희미하게 켜져 있어 방 번호 찾기가 술래잡기 게임에 가깝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북한 안내원에게 “밤에 혼자 시내에 나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물론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3명의 외출(?) 희망자를 구해 저녁을 먹자마자 호텔 밖으로 나와 걸었다. 그런데 가로등이 없어 어디가 어딘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불켜진 건물이 있어야 목표를 정하고 나가겠는데 사방이 칠흑이니 동서남북의 감각이 마비되었다. 돌부리에 채이며 헛발 딛기를 15분 가량 하고 나니까 더 이상 걸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빠삐용 신세가 되어 다시 호텔로 되돌아왔다.
평양 고층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있기는 있는데 전기를 아끼느라 폐쇄시켜 놓았다. 10층이나 15층을 주민들이 걸어 올라간다. 한국이나 미국 같으면 높은 층일수록 비쌀 텐데 평양은 정반대다. 맨 아래층에 당 간부 등 힘쓰는 사람들이 살고 위로 올라 갈수록 빽(?)없는 사람들이 산다. 늙은 부모를 모시고 있는 사람들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는 모양이다. 전망 좋을수록 살기 나쁜 아파트로 꼽히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겨울에는 아파트건물 전체가 비닐로 씌워져 있고 네거리 교통 신호등도 꺼져 있다. 미국 인공위성이 찍은 평양의 밤 사진을 보면 까만데 흰 점이 몇 개 있을 뿐이다.
몇년 전 금강산에 갔을 때 일이다. 현대아산 현지 책임자가 언론인들에게 점심을 낸다며 금강산호텔 식당으로 초대했다. 금강산호텔은 남북회담이 열리고 이산가족 상봉장소로도 쓰인 이름 있는 호텔이라 근사할 줄 알았다. 그런데 호텔 특실이라는 방에 식사를 차려놓긴 했는데 12월에 히터가 없었다. 조금 있더니 북한 안내양이 석유난로를 켜들고 들어왔으나 석유냄새 때문에 식욕이 모두 달아나 버렸다.
북한의 전기사정이 악화된 이유는 송전시설이 낡아 누전이 심한데다 김정일 체제를 과시하느라 산업용 전력수요가 급증했고, 러시아가 시장경제를 내세우며 전처럼 원유를 싸게 공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제 건설은 바로 전력건설을 의미한다.
며칠 전 노무현 정부가 200만kw의 전력을 북한에 공급할 용의가 있다고 했는데 북한이 필요한 양은 450만kw라고 하니 수요의 절반을 부담하는 셈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폐기에 동의하면”이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북한은 이미 크레딧을 잃은 나라다. 94년 제네바 합의에서 핵동결을 약속하여 경수로를 짓기 시작한 것인데 그동안 부어넣은 11억달러를 백지화하고 또 송전운운 하는 것은 2년 후에 있을 대선을 위한 전시용이라는 오해를 낳기 쉽다.
도대체 남한의 송전 제안을 북한이 받아들일까의 여부 자체가 애매한 형편이다. 남북문제를 둘러싸고 뭔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려고만 발버둥치는 같아 현 정부가 보기에 딱하다.
이철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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