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염색체지도 연구하는 벤터 박사 요트 타고 북대서양 누벼
물, 흙, 공기 샘플 채집해 유전자 검색·분류
항해하며 박테리아, 바이러스 1,800종 첫 발견
터마이트 창자 속 미생물의 유전자 파악하면
공해유발 않고 가솔린 대체재인 에타놀 생성
과학자 J. 벤터가 95피트 길이의 호화요트를 타고 2만5,000마일의 장정에 오를 때 사람들은 그가 장거리 세계여행을 떠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연방정부와 공동으로 인간염색체 지도 ‘지놈’(Genome)을 작성하기 위해 생명의 근원을 찾아 나섰다.
벤터는 금광을 캐러 가는 게 아니다. DNA를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인간 지놈을 해석하는 기술을 바다와 공기로부터 미생물의 유전자를 발견하는 데 적용하려 한다. 북대서양 사가소해를 관통하는 처녀 항해에 나선 벤터는 예기치 못한 성과에 놀랐다. 사가소해는 생물학적으로 사막과 같은 지역으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항해에서 1,800여종의 새로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확인했다고 시사주간지 ‘타임’이 최근호에서 소개했다.
벤터와 그의 라이벌 프란시스 콜린스가 백악관에서 함께 “이제 인간의 염색체 지도를 해독하게 됐다”고 발표하자 과학자들은 이 일을 계기로 암이나 다른 치명적인 질환 치료에 서광이 비추는 게 아니냐 하며 흥분했었다. 또 부부가 자신들의 장점만을 살린 아이를 디자인하듯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대도 낳았었다.
과학자들과 제약회사들은 지놈 연구결과를 실생활에 선용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인간 염색체 지도 해독에 대한 기대만큼과 달리 실질적인 열매는 미미했다. 앞으로 10년 내지 15년이 지나야 약이 개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학자들의 연구는 끊임없다. 현대 침팬지, 고대 동굴곰,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의 지놈을 해독함으로써 중요한 단서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연구비용 절감도 학자들을 고무시켰다. 한 쌍의 염색체를 맞추는 비용이 1990년 10달러에서 지금은 0.1센트로 뚝 떨어져 연구 활성화에 기여했다. 지구상의 지놈은 99%가 미해독 상태지만, 인간의 경우 많은 유전자를 규명했다.
게다가 학자들은 개별 유전자들의 기능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됐다. 햇빛을 당분으로 변환하는 미생물이나 공기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미생물, 그리고 죽은 식물을 깨끗한 수소로 바꾸는 일을 하는 미생물을 발견하는 것은 여전히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학자들은 이러한 염색체를 찾기 위해 바다뿐 아니라 공기에도 의존한다. 온천이나 독성물질 폐기처리장, 땅속 등도 연구대상이다. 일례로 흙 1그램을 퍼내 유전자 검사를 하면 그 흙 속에 무엇이 존재하는가를 알 수 있다. 생태계가 다양할수록 그 속에 있는 유전자도 다양하다는 게 학자들의 연구결과이다.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미생물을 연구실에서 배양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흙이나 물, 공기 샘플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유전자 검색이 가능하다. 월넛에 있는 연방에너지부 실험실인 합동지놈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지난 4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여러 생태계에서 번성하는 미생물 혼합체를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했다.
농토에서는 죽은 식물들의 썩은 유전자들을 분해하는 물질을 생성하는 여러 유전자들이 존재한다. 이와 달리 바다에는 이처럼 썩은 유전자는 매우 드물다. 그 대신 염분을 생성하는 유전자들이 많다. 과학자들은 건강한 환경에서의 미생물 유전자 현황을 파악함으로써 다른 생태계의 건강상태도 측량할 수 있다.
탐험에 나선 벤터는 사가소해에서 놀랄만한 일을 경험했다. 사람의 망막을 구성하는 단백질과 같이 빛에 민감한 단백질을 만드는 약 800개의 유전자를 발견했다. 벤터는 사가소해에 유난히 많은 생명체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빛에 민감한 단백질을 생성하는 유전자 때문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유전자 연구는 비단 환경요인과 놀랄만한 생물학적 발견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소를 예로 들자. 수소는 석유, 석탄, 천연개스 등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무공해 연료로 각광받고 있다. 이 지구상에는 수소를 생성하는 미생물이 있다. 이들의 유전자를 분류해 수소 생성 인자를 확인해 낸다면 어마어마한 혜택을 인류에게 안겨줄 수 있다.
한편 가솔린 대체재인 에타놀은 대체로 옥수수에서 추출된다. 현재 에타놀을 추출하려면 강한 화학물질을 사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미생물을 활용한다면 가뿐히 에타놀을 추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앞으로 10년 내 실험실에서 ‘수퍼 미생물’을 만들어 공해를 유발하지 않으면서 에타놀을 생성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란 게 학자들의 전망이다. 터마이트의 창자 속에 기생하는 박테리아에서 수소와 에타놀을 생성하는 유전자를 찾는 노력이나, 방사능 폐기물을 분해하는 미생물을 생성하는 유전자를 찾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