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장근씨의 아버지 이영무씨와 어머니 인숙씨
지난 1999년 8월 15일 평화봉사단(Peace Corp)의 일원으로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귀국을 몇 일 앞두고 2001년 8월 17일 급성 백혈병으로 갑작스레 사망한 ‘아름다운 청년’ 이장근(당시 31세)씨를 기리기 위해 ‘장 이 메모리얼 랭귀지 센터’가 현지에 문을 열었다.
고 이장근씨와 함께 일했던 평화봉사단 동료들이 그의 넋과 봉사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미 국제 발전 에이전시(USAID)에 기금을 요청, 우즈베키스탄의 오지인 듀갈에 랭귀지 센터가 올 4월 4일 세워지게 됐다.
랭귀지 센터 개관식에는 평화봉사단 동료들과 마을주민, 장씨가 지도했던 학생과 관계자 등이 참석, 그의 숭고했던 봉사정신이 랭귀지 센터를 통해 다시 살아나기를 기원했다.
장 이 랭귀지 센터에는 외국어 비디오 도서관과 기존 컴퓨터 업그레이드 및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제3, 4대 체육회장을 역임한 이명무씨와 그의 부인 이인숙씨는 녀석이 그곳에서 쾌 열심히 일 했었어 던 모양이다며 흐뭇한 미소와 함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장근씨가 봉사했던 듀갈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쉬켄트에서 기차로 9시간을 더 들어간다. 전화도 없고 소포를 부치면 6개월이 넘어서야 받는 그곳에서 장근씨는 주민들에게 영어와 함께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도 가르쳤다.
가슴에 ‘사랑’이라는 활화산을 품었던 그가, 비행기 티켓이 구해지는 데로 귀국하겠다던 그가 2001년 8월 14일 어지럼증과 고열을 호소하다 런던의 로열 프리 병원으로 옮긴지 24시간만에 사망했다는 비보가 17일 이들 부부에게 날아왔다.
이인숙씨는 그동안 가슴이 아파서 사진도 제대로 못 봤다면서 아직도 그곳에 살고있는 것 같고, 가슴에 장근이를 묻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 동네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도 가르치고 그림, 체스, 축구도 가르쳤다고 들었다면서 그 애는 5살 때 미국에 이민아 미국에서 자랐지만, 우즈베키스탄인으로 살다가 갔다며 고인의 사진을 꺼내 어루만졌다.
이명무씨도 장근이는 우즈베키스탄에 영원히 살고 있을 것이라며 아들이 있었던 곳인데 살아생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며 아름답게 살다간 아들 이장근씨의 사진을 가만히 응시했다.
<김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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