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선출된 로마 교황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는 그가 택한 즉위명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콘클라베(추기경들의 비밀선거)에서 교황이 탄생하면 먼저 그가 교황직을 수락하겠는가를 확인한 다음 어떤 즉위명을 가지겠는가를 다시 묻도록 되어 있다. 새 교황 명칭은 당선자가 평소 존경해온 교황의 이름을 선택하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즉위명은 단순히 이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 교황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뮨헨 주교 출신인 라칭거 추기경은 즉위명을 베네딕토 16세로 정했다. 이는 자신이 제256대 교황인 베네딕토 15세의 노선을 따르겠다는 암시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베네딕토 15세가 어떤 교황인가 하면 1920년 초에 가톨릭 내의 보수파와 진보파의 대립을 막아보려고 전심전력을 기울였으나 그 노력을 별로 평가받지 못한 교황이다. 라칭거 추기경이 베네딕토 16세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은 앞으로 보수파와 진보파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도 되고 세상에서 인정하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보수파로 알려진 라칭거 추기경(78)은 추기경 단장직을 맡고 있는 현 교황청 실세 중의 실세다. 콘클라베 이틀만에 교황에 뽑힌 것은 드문 예로 추기경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증거다. 보통 콘클라베 전에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는 사람은 교황에 뽑히지 않는 법인데 라칭거 추기경은 처음부터 파파빌레(후보)로 소문났음에도 선출된 예외적인 케이스다.
라칭거 추기경 자신은 교황에 선출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콘클라베 전에 고참 추기경이 “어떤 사람이 교황이 되어야 할 것인가”의 가이드 라인을 다른 추기경들에게 설명하게 되어 있는데 이번에 이 역할을 맡은 것이 라칭거 추기경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오늘날 크리스찬에게 필요한 것은 세속적인 가치와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일이며 여기에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가톨릭은 세상 가치에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진보파의 표를 의식하지 않은 과감한 논리를 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교황에 당선되었다는 것은 추기경들이 과학과 개인주의가 판치는 이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인기를 생각지 않는 교 황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과거 기자회견에서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EU(유럽연합)을 공공연히 반대하면서 “유럽의 원형은 크리스찬 문화이며 이슬람 문화와는 조화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대담한 사람이다. 그의 측근인 비피 추기경(볼로냐)은 “이탈리아는 이슬람국 출신 이민을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보수파인 뉴욕의 이간 추기경이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가깝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욕먹는 것을 겁내지 않고 원칙을 과감히 밀고 나가는 타입이며 이슬람의 팽창으로 기독교 문화가 위협받고 있는 것을 가장 염려하는 가톨릭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크리스찬들이 속세의 가치와 너무 타협해 기독교 신앙이 원형을 잃어가고 있으며 이대로 가면 기독교가 무슨 종교인지조차 개념이 희미해지는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평소 경고해온 가톨릭 보수파의 사령탑이었다.
그가 교황으로 재직하고 있는 동안은 여사제 문제, 임신중절, 동성애, 사제의 결혼문제 등은 바티칸의 회의 의제에도 오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사>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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