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가 아름답지만 그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정성 들여 가꿔야 장미다워 진다. 가지 쳐주고 햇볕 받으면서 자란 장미와 그늘에 내버려둔 채 자란 장미는 꽃 필 때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싱싱하고 꽃송이도 큰데 비해 후자는 비쩍 마르고 꽃도 작아 영양실조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사람의 몸매도 가꾸기 나름이다. 얼마 전 미국 TV에서 몸 열심히 가꾸는 캘리포니아 주부와 부엌일에만 충실한 플로리다 주부의 한달 생활을 비교한 특집이 방영된 적이 있는데 여성들이 날씬하고 젊게 보이려면 뼈 깎는 자기단련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인간에게 몸매 가꾸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신건강이다. 육체적으로 아무리 활짝 꽃을 피워도 정신적인 성장이 곁들여지지 않은 사람은 싱싱해 보이지 않고 인격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가 없다.
정신에도 영양제가 필요하다. 특히 이민생활에서는 앞만 보고 달리기 때문에 한참 달리다 보면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다. 이민생활 20년이 지나면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지만 정신적으로는 찌들대로 찌들어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성격도 이상해진 사람들을 주변에서 자주 본다.
정신은 행동을 낳는다. 정신의 방향이 달라지면 행동 방향도 달라지게 된다.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운명을 좌우한다. 때문에 정신건강은 우리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 생각이 바뀌어야 운명이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신건강을 가볍게 생각하고 마음의 정원을 가꾸려 하지 않는다. 잡초가 무성하고 심지어는 독초가 자라고 있는데도 뽑아내려 하지 않는다.
정신건강은 왜 중요한가. 사람은 인격이기 때문이다. 물건은 거기에 있는 존재일 뿐이며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존재임과 동시에 인격이다. 인격으로 사람 됨됨이를 판단한다. 흔히 우리가 직장에서 누구를 채용할 때 제일 먼저 “그 사람 어때?”라고 묻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사람 잘 생겼어? 그 여자 미인이야?”라고 묻는 예는 거의 없다. 이 인격의 주체가 정신이다. 정신이 삐뚤어지면 인격도 삐뚤어지게 된다. 그래서 정신에도 영양제가 필요한 것이다.
정신에 좋은 영양제는 무엇인가.
사색이다. 아무리 좋은 차 엔진이라 해도 매일 18시간씩 쉬지 않고 달리면 고장나게 되어 있다. 이민생활에 쫓겨 사색할 틈이 어디 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차 몰고 다니면서 개솔린 넣을 시간이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마음의 정원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자신을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이 불가결의 요소다. 인간만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으며 원숭이도 사람 비슷하다고 하지만 사색하는 능력은 없다. 사색은 인간의 특권이다. 사색은 나와 나의 싸움이다. 사색을 통해 인간은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가을을 사색의 계절이라고 부르지만 1년을 돌아보는 요즘이야말로 사색의 계절이다. 1년에 한번쯤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를 심각하게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12월의 마지막 날들이다.
이철 <주 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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