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망년회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동시픽업 같은 것이 없었다. 술을 먹고 새벽 3시쯤 프리웨이 내리막길을 달리는데 2~3초 깜빡 졸았다. 눈을 떠보니 대형 화물트럭 꽁무니가 시야를 막고 있었다. 내리막이라 대형 트럭은 시속 30마일 정도로 천천히 가고 있었고 내차는 65마일로 달리고 있었으니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는가는 뻔한 일이다. 내차가 트럭 밑으로 깔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제일 왼쪽 레인은 경찰 눈에 잘 띈다고 해서 오른쪽 끝 레인을 택한 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 오른쪽 레인에는 새벽에 트럭들이 몰려 있다는 것을 미쳐 염두에 두지 못했다.
당황한 나머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니 차가 빙글빙글 돌며 프리웨이 가운데로 게걸음을 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차가 거꾸로 서있는 것이 아닌가. 달릴 수도 없고 내릴 수도 없어 진퇴양난인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찰 차가 달려오는 차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때처럼 경찰 차가 반가웠던 적이 없다. 운 나쁘게 걸려들었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경찰이 나중에 음주운전 티켓을 떼는데 “THANK YOU!” 소리가 저절로 나왔을 정도였으니 필자가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가 짐작되리라 생각한다.
경찰관이 알콜 테스트 중 어떤 방법을 택하겠느냐고 물었다. “후-”하고 입으로 부는 호흡기 검사, 소변 테스트, 마지막으로 혈액 검사등 세 가지가 있다. 혹시 알콜 농도가 낮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혈액검사를 택했는데 이것이 내가 범한 두번째 실수다. 술 냄새가 나더라도 호흡기 측정을 해야 재판 때 유리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유치장 대기실에 들어갔더니 음주운전으로 잡혀 들어온 사람이 50여명쯤 되는데 넥타이 맨 동양인이라고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정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흑인과 히스패닉이었다. 새벽 5시쯤 되니까 호명을 해 한 사람씩 감방으로 데리고 가는데 내 앞 세 번째에 와서는 호명이 멎었다. 조금 있더니 경찰관이 다가와 “유 가이스 러키!”(운 좋은 줄 알아) 하며 집으로 가란다. 연말을 맞아 음주운전자로 감옥이 초만원이라 더 이상 수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꿈이냐, 생시냐. 하늘을 나를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재판은 받아야만 했다. 나는 이 취중운전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사고만 없다면 술 마시는 사람들은 한번씩 혼날 만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연말을 맞아 송년회가 자주 열리는데 프리웨이를 거꾸로 달리다가 차 사고로 숨진 어느 치과의사의 비극이 가는 데마다 화제다. 유능한 일꾼인데 너무 안됐다고 하면서 또 술을 마셔댄다. 음주운전은 차가 비틀거려서 걸려드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졸면서 운전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리고 라이트 켜는 것을 깜빡 잊었다던가 레인을 바꿀 때 시그널을 주지 않는 등 사소한 실수로 경찰의 눈에 띄게 되는 것이다. 항상 취중운전 후 15분 지나면 졸리게 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에 이민 와서 3가지를 겪지 않은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에 속한다. 그 세 가지란 첫째 강도, 둘째 대형 차사고, 셋째 음주운전이다. 연말 모임에서 누가 음주운전 사고를 내면 그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두고두고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을 주당들은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이론적인 설명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충고이다.
이철 <주 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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