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크리스마스는 하나의 불가사의다. 총인구 1억2,700만명중 8,700만명이 불교신자이고 8,800만명이 신사를 참배하는 신토신자이다. 숫자가 겹치는 이유는 일본인들이 불교를 믿으면서 동시에 신토도 드나들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신토나 일반 예식장에서 하지만 장례식은 대부분 절에서 한다. 기독교 인구는 100만으로 극소수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는 일본인들이 요란하게 지내는 명절이다. 12월에 도쿄를 방문하면 긴자 거리를 수놓은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 장식에 놀라게 된다. 크리스찬이 아니면서 크리스마스를 큰 명절로 세고 있으니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불가사의는 또 있다. 요즘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욘사마 열풍’이다. 한국 TV 탤런트 배용준에 대한 일본 여성 팬들의 극성은 거의 광기에 가깝다. 긴자의 미스꼬시 백화점에는 배용준의 실물 사이즈와 똑같은 사진을 세워 놓았는데 여성 팬들이 거기서 기념촬영을 하려고 난리인 모양이다.
배용준이 도착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나리타 공항에 일본 여성들이 7,000여명이나 몰려들어 아우성 치는 장면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심지어 그가 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갈 때 가까이 가려고 서로 밀치다가 넘어져 여러 사람이 다친 후 배용준은 더 큰 안전사고가 날까봐 결국 자신의 사진전 테입 커팅에도 참석하지 못했다니 그 광기를 짐작할 만하다.
사진에 나타난 여성들은 짐작컨대 35세에서 40세쯤 되어 보인다. ‘배사모 클럽’ 회장이라는 일본 여성의 나이도 35세다. 철없는 여학생이 아니라 이미 사회에 진출한 직장여성이나 가정주부라는데 놀라움이 있다. 한국 여성들이 일본 남자배우를 보기 위해 인천공항에 수천명이 몰려들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여기저기서 꼴불견이라는 소리가 터질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남편들이 가만있을까. 그런데 한국 남자들보다 더 여자에게 군림해온 일본 남성들이 욘사마 광기에 대해 아무 표정이 없으니 이것 또한 신기한 현상이다.
일본은 지금 여성 극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히말라야에 가보면 혼자 셀퍼를 대동하고 산에 오르는 일본 여성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여관마루에서 셀퍼와 아무 거리낌없이 함께 잔다. 지난해 몽골리아 들판에서는 젊은 일본 여성 3명이 말을 타고 대륙 횡단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이들은 직장 여성들로 그와 같은 여행을 하기 위해 1년 동안 봉급을 저축했다고 한다. 인적이 드문 허허벌판을 일주일씩이나 여성들이 말 타고 달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혼자 여행하다 실종되는 일본 여성들도 있다. 카트만두의 거리에는 실종된 일본 여성들을 찾는 벽보가 붙어 있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잘 먹고, 잘 놀고, 즐기는 것이 인생의 최대 행복이라는 물질중심 사상이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 판을 치고 있다. 극성에 물질만능이 합쳐지니 사회에 기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일본 여성들은 남성을 하늘처럼 모시는 그런 여성들이 아니고 눈치보는 사회분위기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표정이다. 행복하게 사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다. 전통을 깬 것까지는 좋았는데 정신적으로는 방황하고 있는 인상이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배용준이 나타났다. TV 연속극 ‘겨울연가’에 등장하는 배용준은 일본 여성들이 그리는 전형적인 이상형이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배용준을 사랑한다기보다 자신들이 만든 틀에 배용준을 끼워 넣은 것이다. 일본의 기형적인 크리스마스, 그리고 욘사마 열풍은 외국인들에게는 정말 이해가 안가는 불가사의다.
이철 <주 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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