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방문하면 굉장히 신경 쓰이는 것이 하나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어떻게 불러야 되느냐의 호칭 문제다. ‘수령’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하고 ‘장군’이라고 부르기도 거북하다. 더구나 ‘수령’이나 ‘장군’ 호칭에는 ‘님’자를 붙여야 한다. 할 수 없이 호칭을 안 쓰고 물어보려니 그 고충이 보통이 아니다.
예를 들어 “김일성 시대와 김정일 시대의 사회적인 분위기 차이가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할 것을 “옛날에 비해 요즘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가”라고 묻는다. 그러니 질문이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구두 신고 가려운 데 긁는 셈이다. 모범적인 답안은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 시대와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 시대의 사회적인 분위기 차이는 무엇인가”인데 이렇게는 차마 입이 열리지를 않는다.
김일성이나 김정일 호칭을 잘못 표현하면 북한 관리들에게 큰 봉변 당한다. 과거 판문점에서 어느 남한 기자가 북한 기자에게 “어이, 당신네 수령 요즘 잘 있어?”라고 농담했다가 집단폭행 당할 뻔한 일이 있었다. 갖은 욕을 퍼부으며 달려드는데 친아버지를 놀려도 그렇게까지는 흥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남한 기자들이 “당신네 수령님 말씀이야…”하고 비꼬니까 북한 기자들이 사정해 왔다. 체제를 비난하거나 욕하는 것도 참겠는데 제발 자기들 앞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모욕하는 언사는 삼가해 달라는 것이다.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였다. 남한 기자가 노동신문을 깔고 앉았는데 옆에 있던 북한 TV 방송요원이 핏대 올리면서 대들었다. 남한 기자가 “왜 그러느냐”고 어리둥절해 하니까 경애하는 김정일 지도자의 사진을 깔고 앉았다는 것이다. 당시 신문에 보도된 가십기사 내용이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풍토다.
기자가 놀란 것은 금강산에 관광 갔을 때다. 73년인가 언제 김일성이 금강산에 온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입구에 김일성 수령께서 다녀가셨다는 정도의 기념비라면 그래도 이해하겠으나 김일성이 앉아서 쉬던 곳, 약수 마시던 곳, 금강산이 절경이라고 언급한 곳 등 그가 잠시 머문 곳마다 기념비를 세웠는데 그게 하나 둘이 아니다. 더구나 남한 관광객들이 그 성스러운 비석을 더럽힐까봐 여자 안내원 2명씩 비석에 배치되어 있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재작년 평양 갔을 때의 일이다. 식당 웨이트리스에게 팀을 주었더니 “이거 무엇입네까”하고 묻는다. 화장품이라도 사서 쓰라고 했더니(팁치고는 넉넉한 액수였다) 이 아가씨 한다는 소리가 “우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좋은 화장품을 주십네다”라며 사양한다. 그러면 아이들 과자라도 사주라고 했더니 “존경하는 지도자 동무께서 과자도 주십네다”하면서 한사코 안 받는다. 입만 열었다 하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위대한 수령(김일성)께서”가 튀어나온다. 나중에 평양에 자주 다녀간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동료들 있는 데서는 팁을 거절한다고 한다. 팁을 주려면 아무도 없을 때 주라는 것이다. 북한 문화는 이슬람 문화만큼이나 다르게 느껴진다.
며칠 전 북한에서 김정일 초상화가 일부 철거된 것은 김일성 부자 우상화에 관한 외부의 차가운 시각을 돌리기 위한 전술적인 변화일 수도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국제 무대로 나오려면 이번 기회에 변신을 해보는 것도 북한 이미지 개선의 한 방법이라고 본다. 핵을 가졌다고 큰 소리만 칠 일이 아니다. 북한은 남한테 우습게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시급하다.
이철 <주 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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