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서울에 갔더니 언론사 친구들이 신임 미국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8월 부임한 크리스토퍼 힐 대사가 한국민들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 대사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말이었다.
한국의 반미 정서를 의식하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려 애쓰고, 특히 진보적인 젊은 세대와 의견을 나누고 싶어한다고 했다.
개방적이고 소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한달 전인 9월 국립 5.18묘지를 참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개인 자격의 비공식 방문이기는 하지만, 미국도 부담감이 없을 수 없는 광주 민주화 항쟁의 기념지를 주한 미대사가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 8일에 또 새로운 시도를 했다. 한국민과 수시로 의견교환을 하자며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다음(daum)’에 온라인커뮤니티‘카페 USA’(cafe.daum.net/ usembassy)를 개설했다. 한국이 세계에서 인터넷 사용률이 가장 높은 국가중의 하나이니 인터넷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화의 길을 열자는 취지였다.
때와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고, 익명의 홀가분함을 보장하는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하면 좀 더 많은 한국민들과 좀 더 허심탄회한 의견 교환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었을 것 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개설 며칠만에 1만 여명이 방문을 하고, 수천명이 회원 등록을 할 정도로 반응은 대단했다. 그런데 너무 지나치게 허심탄회한 것이 문제였다. 한미관계의 불합리성, 미국의 이라크 공격의 부당함을 공격하는 등 반미 의견 개진까지는 좋았는데 욕설, 비방, 비어, 속어가 난무하니 대사관측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비방, 인신 공격성 글들이 올라오자 대사관측은 즉시 공지문을 내보냈다. 욕설이나 부적절한 용어를 쓴 글, 음란 사진이나 한국 정부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사진들은 삭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카페’의 글들이 많이 순화되어 있다.
가장 민주적 의사교환의 통로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 카페가 저질 욕설의 장으로 추락했다. 엄연한 정론지의 인터넷에 들어가 봐도 기사나 칼럼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은 너무 거칠어서 제3자가 읽기도 민망할 정도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지금 보혁 갈등이 첨예한 만큼 어느 한쪽 시각의 글이 나가고 나면 그 반대편 네티즌들이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 필자들은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라고 한다.
문명의 이기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이라는 좋은 공간을 모두가 모두의 인격을 파탄 내는 장소로 이용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사이버 세계에서 고운 말 쓰기 캠페인을 펼쳐야 하겠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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