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에는 몇 가지 징크스가 있다. 1936년이래 투표를 앞두고 예외 없이 워싱턴 레드스킨 풋볼팀이 홈경기에서 지면 야당후보가 당선되고 이기면 여당후보가 당선되고는 했었다. 올해는 레드스킨이 그린베이 팩커스팀에 패해 민주당의 케리가 당선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또 지금까지 12번의 선거에서 두 번을 제외하고는 10번 모두 키 큰 후보가 승리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애덤스 대통령처럼 부자가 대통령이 된 후 재선이 된 예가 없다. 또 걸프전쟁에 이기고도 무명 정치인에게 패한 아버지 부시의 징크스도 깬 셈이다.
미국 선거에서 족집게로 알려진 조그비 인터내셔널 여론조사소는 투표가 끝나자마자 케리의 압승을 예측해 개표 초반에는 매스컴도 케리가 이기는 줄 알았다. 케리와 부시의 선거인단수는 311 대 213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숫자까지 내놓았으니까. 이 모든 징크스와 불리한 예상을 깨고 부시가 재선에 성공했으니 그의 운도 보통 센 것이 아니다.
개표상황 중계에서 전국의 지도가 부시의 지지를 의미하는 빨간색으로 온통 물든 것을 보고 “미국에서 보수세력이 저렇게 막강한가” 하고 누구나 한번씩 놀랐을 것이다. 사실 갓 이민온 한인들은 미국 도시가 미국의 축소판인 줄로 착각한다. 우물안 개구리가 바깥 세상을 내다보지 못하는 격이다. 우리가 아는 미국과 사실상의 미국에는 거리감이 있다.
대륙횡단 여행을 해보면 당장 느낄 수 있다. 시외만 벗어나도 벌써 동네 분위기가 다르다. 흑인, 히스패닉도 드물거니와 있어도 맥도 못쓴다. 온통 백인이다. 그런데 이 백인들은 가난한 편이고 학력도 별로다. 그리고 동네 교회에 열심히 나간다. 남부로 내려갈수록 이 현상이 두드러지고 인종차별 분위기마저 느낄 수 있다. 이들이 바로 부시지지 세력의 핵심이다. 백인 서민층인 이들은 지식층을 싫어한다. 이들이 똘똘 뭉쳐 표를 던진 것이 이번 선거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했던 것은 미국 백인 보수세력이 그에게 배반감을 느껴 클린턴과의 대결에서 적극적으로 득표 활동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 자리에 앉아보니 극우보수로 나가서는 정치가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을 느껴 온건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 극우 쪽에는 보수 배반으로 비친 것이다. 아들 부시는 아버지의 실수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죽으나 사나 극우보수 세력을 끌어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선거기간에 극우적인 자세를 보인 것은 아버지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심 때문일 것 이다.
부시의 선거 메시지는 단순하다. “케리는 테러전쟁을 이끌 지도자감이 못된다”였다. 그가 경제와 외교 문제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는 유권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부시는 테러전쟁에 대한 국민의 두려움을 부채질해 상대방에 대한 무기로 삼았다. 반면 케리는 대통령이 나라를 잘못 끌고 가는 것에 대한 분노를 부채질했다.
결국 두려움과 분노의 대결에서 두려움 작전이 승리한 셈이다. “부시가 실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강을 건너는 동안 말을 바꿀 수는 없다”는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먹혀 들어간 것이다. 단순한 메시지를 유치할 정도의 방법으로 강조하여 국민적인 우려를 집대성시키는데 성공한 것이 부시의 승리 비결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승리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엄청난 후유증이 따를 것 이다.
이철 <주 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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