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일이 며칠 안 남았다. 부시냐, 케리냐.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많은 것 같다. 미국 정치는 민주·공화 양당제도이기 때문에 유권자는 싫든 좋든 두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자유밖에 없다. 얼굴이 찌그러진 남자와 애꾸눈 남자를 신랑후보로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신부의 입장에서는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것이 미국 대통령 선거다.
선거전 막판에서 후보들이 터부로 여기는 금기사항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상대방 후보의 가족문제에 대해서는 절대 언급하면 안 된다. 부시의 딸들이 술을 먹고 어쨌다던가 케리의 재혼한 부인이 전 남편 이야기를 쓸데없이 자주 언급한다는 등의 내용을 농담으로라도 비치면 큰 말썽이 되고 표가 우수수 떨어지게 된다. 미국에서는 재혼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재혼’ 문제를 잘못 입에 올렸다가는 낙선 지름길에 접어들게 된다.
둘째는 어떤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후보가 “안 된다” 소리를 하면 안 된다. 이른바 ‘Never Say Never’ 원칙이다. 예를 들어 부시는 요즘 자신이 동성연애자의 부부생활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인 결혼선언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애매한 말을 하고 있다. 선거전 막바지에 이르면 하나도 표, 둘도 표다.
과거 한국에서는 선거 전날이 가장 중요했다. 선거법을 잘 지키는 척 하다가 투표 전날 밤 돈을 풀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 관행이 없어졌지만 선거 참모들이 캐시를 한 뭉텅이씩 갖고 다니며 유권자들에게 나누어주고는 했었다.
미국에서는 투표 72시간 전이다. 돈으로 표를 매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후보의 이미지를 묘한 방법으로 왜곡하는 총공격이 시작된다. 복싱에서 말하는 벨트 밑 공격이며 신사답지 못한 게임을 의미한다. 비난 내용이 심하더라도 사실이기만 하면 벨트 밑 공격이 아니다. 요즘 TV에 쏟아져 나오는 선거광고를 유심히 살펴보면 벨트 밑 공격이 시작된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인단수는 51지역(50개 주와 위싱턴 DC)에서 모두 538명이다. 따라서 과반수인 269명에서 1표가 더 많은 270표만 얻으면 대통령 당선이다. 271표를 얻을 필요도 없고 300표를 얻을 필요도 없다. 270표만 얻으면 상황 끝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전국 국민투표라기 보다는 51개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치르는 선거다. 골프에 비유하면 홀매치다. 몇 점을 쳤던 관계없다. 몇 홀을 이겼느냐에서 결판이 나게 된다. 부시가 여론조사에서 케리보다 항상 1~3% 앞서고 있지만 예상을 불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선거는 케네디-닉슨 대결이래 가장 열띤 대통령 선거로 꼽히고 있다. 미국 못지 않게 외국의 관심도 대단하다. 이들은 부시와 케리 중 누가 당선되느냐보다 부시가 재선되느냐 낙선하느냐에 관심이 쏠려있다. 미주 한인들은 몸은 민주당에, 마음은 공화당에 가 있는 기현상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선거 때가 되면 스핑크스로 변한다. 마음으로는 부시를 지지하는데 마이너리티 입장에서는 민주당을 밀지 않을 수 없고… 뭐 이런 식이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한인들이 “누구 찍어야 됩니까”라고 묻는 것을 주위에서 자주 본다. 현재 미국이 걷고 있는 방향이 옳다고 믿는 사람은 부시를 찍고, 뭔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케리를 찍을 일이다. 부시는 지금 호랑이 등에 올라탔기 때문에 자신이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가 없는 형편이다. 미국 정책이 방향 수정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다.
이철 <주 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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