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자는 살인죄를 저질러도 경찰에 연행되면 사람 대우받지만 불법체류자는 아무 죄 없는데도 붙잡혀 가면 사람 대우 못 받는 것이 미국이다. 왜? 시민권자는 유권자이기 때문에 대변자(상원의원과 하원의원)가 있다. 반면 불법체류자는 누가 자신을 막 다뤄도 어디 가서 하소연 할 곳이 없다. 그래서 서러운 것이다.
유권자에도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다. 투표등록을 마친 유권자와 일반 유권자는 또 다르다. 투표등록을 하지 않은 유권자는 준비 안된 대통령이나 마찬가지다. 동네의 모든 선거에서 발언권이 없다. 투표권이 없는 사람에게 어떤 정치인이 관심을 갖겠는가. 따라서 시민권자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려면 투표등록을 꼭 해야 한다. 지역 상하원 사무실에서 오는 메일 내용부터가 다르다.
이번에는 등록된 유권자라 해도 정치인들이 똑같이 관심을 가져주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 특히 대통령 선거에서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쉽게 표현하면 부시 지지와 케리 지지가 비슷한 주에 살고 있는 유권자들은 왕 대접받지만 색깔이 뚜렷한 주의 유권자들은 소외당한 느낌이다.
예를 들어 텍사스는 누가 뭐래도 부시 지지다. 부시의 고향인데다 그가 주지사까지 지낸 곳이다. 여기서 케리가 선거운동에 열을 올릴 리가 없고 부시 또한 이 곳에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러다 보니 텍사스 유권자들은 선거철인 데도 양쪽 후보 모두 자기들에게는 윙크도 보내지 않는다. 약혼한 여성에게 프로포즈하는 남자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미국 대통령 선거가 직접선거가 아니라 간접선거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유권자는 대통령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단에 표를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주 선거인단은 표를 많이 얻은 쪽이 몽땅 차지하도록 되어 있다(Winner Takes All).
그래서 후보들은 선거 막바지에 이르면 상대편과 아군을 명확히 구분해 승산이 없는 주는 아예 포기하고 색깔이 드러나지 않은 주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부시나 케리 어느 쪽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주는 현재 오하이오 등 15개 주에 이른다. 말하자면 예측을 불허하는 실력백중한 주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또 차별이 있다. 뉴멕시코 같은 주는 대의원수가 5명인데 비해 플로리다주는 27명이나 된다. 3개의 뉴멕시코급을 잃더라도 한 개의 플로리다급에서 이겨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이는 주는 플로리다(27명), 오하이오(20), 펜실바니아(21)등 3개 주가 꼽히고 있다. 3개 주중에 2개를 장악하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요즘 부시와 케리가 어느 주를 뻔질나게 드나드는가 유심히 살펴보면 선거전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있다”는 선거전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솔직히 말해 후보자의 입장에서 보면 유권자라 해도 똑같은 유권자가 아니다. 예측을 불허하는 15개 주, 그 중에서도 선거인 대의원을 많이 갖고 있는 오하이오 등 3개 주의 유권자에게 애정을 더 표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철 <주 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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