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TV의 네트웍 뉴스앵커 피터 제닝스, NBC의 톰 브로커우, CBS의 댄 래더를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표준 남성이 어떤 형인지 짐작할 수 있다. 백인이고, 프로테스탄 가정에서 자랐고, 중류대학 출신이고, 정직해 보이는 인상이다.
TV 뉴스 앵커에게서 무게를 빼놓으면 평범한 방송인이 되어 버린다. 그가 수퍼스타인 이유는 누구도 그의 표정과 신중한 억양을 흉내낼 수 없는데 있다. 은퇴한 CBS의 월터 크롱카이트가 전설적인 앵커로 존경받고 있는 이유는 뉴스 전달자로서의 무게다. 콩을 팥이라 해도 미국민들이 믿을 정도였다. 존슨 대통령 같은 사람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나의 정책을 지지해도 월터 크롱카이트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정책이다”라고 언급했을 정도였다.
캐나다 출신인 피터 제닝스는 ABC의 중동 특파원과 런던 특파원을 오래한 유럽통이다. 보수 진보 양쪽 사람들이 다 좋아하며 바닥으로 내려간 ABC 뉴스를 톱으로 끌어올린(CNN 제외) 장본인이다. NBC의 톰 브로커우는 사우스다코타 시골 출신으로 점잖은 중서부 미백인 이미지의 전형이다. 날카로운 질문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그의 특기이기 때문에 공화당 보수파들이 그를 좋아하며 특히 레이건과 부시 대통령 부자가 그의 팬 이다.
CBS의 댄 래더(72) _ 이 사람은 좀 튀는 앵커다. 뉴스를 전하기도 하지만 뉴스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뉴스 캐스터이면서 뉴스 메이커다. 닉슨과 싸우고, 밤 거리에서 테러 당하고, 택시 운전사와 납치소동을 벌이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종군하고, 후세인과 단독 인터뷰하고… 좌우간 가는 곳마다 화제를 낳는 인물이다. 공화당 보수파가 극도로 미워하고 민주당 진보파가 제일 좋아하는 앵커다.
그 댄 래더가 현 부시 대통령의 군복무 경력을 둘러싸고 지난 9월8일 오보를 내 마침내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부시가 민방위군 항공대 근무시절 특혜를 받았다는 문서를 입수해 기세 좋게 폭로했으나 알고 보니 그 문서는 조작된 것이었다. CBS와 본인의 체면이 지금 말씀이 아니다. CBS 뉴스가 무게를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련한 기자인 댄 래더가 왜 이같은 실수를 했을까.
원래 방위군 복무로 때운 부시의 병역필에 대해 전부터 뒷말이 많았고 이같은 백그라운드에서 부시의 방위군 복무자세가 엉망이었다는 서류가 발견되자 댄 래더가 특종중의 특종이라고 덥석 잡은 것이 오보가 되어버린 것이다. 황금에 눈이 어두우면 사람이 안 보이는 법이고 기자가 특종에 눈이 어두우면 기사의 밸런스 감각이 마비되는 법이다.
사람이 정상에 서게 되면 자기를 감독하는 체크 시스템이 없어져 모든 것을 혼자 결정 내려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직이 어려운 것이다. 댄 래더도 CBS 뉴스의 정상에 너무 오래 있어 나름대로의 왕국을 건설했기 때문에 그의 결정이 의심스러워도 참모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남을 비판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자신을 비판하는 능력은 약한 것이 기자들이다. 댄 래더는 그 함정에 빠진 것이다. 과욕과 독선이 빚은 비극이며 기자들이 거울로 삼아야 할 사건이다.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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