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인터넷판을 보면 이라크 전쟁 특집이 실려 있다. 그중 포토 갤러리에 들어가면 우리가 전혀 신문이나 TV에서 볼 수 없었던 이라크 전쟁의 다른 면이 그려져 있는 것에 놀라게 된다. 엊그제 격전이 진행된 팔루자 부근 사드르 전투에서 동료를 잃고 우는 미군 사병의 사진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또 다른 사진은 저항세력의 습격을 받고 장갑차에서 숨진 2명의 미군의 사체가 밖으로 옮겨지는 장면인데 장갑차 안팎으로 온통 피가 뿌려져 있고 손에는 약혼반지가 끼워져 있는 것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그리고 미군 MP 2명이 서로 끌어안고 눈물 흘리며 위로하는 사진도 있다. 반면 이라크 저항세력은 살기 등등하고 무엇에도 겁내지 않는 광적인 모습들이다. 어떻게 이 정도로 표정이 다를 수가 있을까.
이라크 참전 미군 사병들의 사진 치고 사기충천한 표정은 개전 초기 이외에는 본적이 없다. 대부분 하기 싫은 전쟁을 억지로 수행하는 기색이고 공포에 질린 얼굴들이다. 지난 4월19일자 타임지 표지에 게재된 사진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대니엘 투에르크라는 해병은 동료 12명을 잃은 후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어 보기에도 애처롭다.
이들은 누구인가.
시사주간지의 인터넷에는 이라크 전쟁에서 숨진 미군 장병들의 명단이 실려 있다. 대부분 시골 출신들이고 대도시 출신은 극히 드물다. 최초의 전사자는 호세 구티에레즈 일병인데 그는 과테말라에서 온 불법체류자였으며 장례식에서 미국 시민권이 부여됐다. 최근의 전사자는 9월20일에 숨진 스티븐 케이츠 상병으로 테네시의 시골 마운트 줄리엣 출신이다. 대부분이 19세에서 25세다. 꽃 같은 나이에 봉오리를 피워보지도 못하고 나라를 위해 숨진 것이다.
부시와 이라크 전쟁을 비꼰 영화 ‘화씨 911도’에서 무어 감독이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출근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아들을 이라크 전쟁에 보낼 용의가 있느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있다. 의원들은 하나 같이 무어의 인터뷰를 피해 달아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연방 상하의원 중 이라크전에 자식을 보낸 사람은 한 명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것도 장교다.
월남전 때와는 달리 미국 군대는 지금 징병제가 아니라 지원병제다.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왜 군에 입대하는지는 포로가 되었다가 구출된 제시카 일병의 케이스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마땅한 직업을 찾을 수 없는 데다 제대 후 여러 가지 혜택을 고려해 입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복무위험을 줄이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전투병과 아닌 통신, 수송, 인사 등 특수병과를 지원하지만 이라크전에서는 전후방이 없어 예상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제시카 일병도 수송병이었다. 더구나 미국인들에 대한 참수사건이 늘어난 후 최근에는 지원병이 점점 줄고 있어 군의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아직은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지만 사정이 최악에 이르면 월남전 때처럼 징병제를 실시할지도 모른다. 비록 잠자고 있는 법안이기는 하지만 징병제 부활 법안이 의회에 올라가 있다.
부시 대통령은 연설 때마다 “이라크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중동의 평화를 위하여” 운운하나 현지 미군 병사들의 표정을 보면 지겹고 지친 얼굴들이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지고 있는 전쟁이라는 것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어떤 싸움에서나 당사자들의 표정에서 승패를 읽을 수 있는 법이다. 월남전처럼 승리했다고 선언한 후 철수하는 미국식 체면 차리기 과정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라크전은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진 대표적인 케이스로 미국전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철 주필
chullee@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