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도자들의 권력승계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덩샤오핑이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그가 꿈꾸어온 이상적인 정권 교체가 그가 죽은 후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시범보인 길을 그의 후계자들이 그대로 걷고 있다.
이상적인 정권교체는 예술경지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것은 파워플레이의 절정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나 교회에서나, 단체에서나 공공기관에서나 모든 모임에서 들어오는 사람과 나가는 사람의 인간관계가 원만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자주 목격하는 일이지만 비즈니스 인수인계에서도 서로 기분이 상해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이 허다하다. 하물며 모든 것을 잡았다가 놓는 정권의 권력승계가 잡음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권력을 놓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바라는 것은 은퇴 후 보복을 당하지 않는 일과 후계자가 전임자의 쌓아올린 업적을 인정해 주는 일이다. 아주 쉬운 것 같은데 너무나 어려운 일에 속한다. 중국의 정치무대에서 이 숙제를 해낸 사람이 바로 덩샤오핑이다. 그는 89년 6월 천안문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한 후 불안한 여건 하에서도 그해 11월 당 국방위원장 자리를 미련 없이 장쩌민 주석에게 물려주었다. 그런데도 사실상 죽을 때까지 중국의 상징적인 지도자로 남아있었고 중요한 정책 결정에서는 장쩌민이 자문을 구해 왔다.
베이징을 여행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천안문 광장 앞에 내 걸린 마우쩌둥의 초상화와 길 건너편에 있는 마우쩌둥 기념관 앞에 늘어서 있는 참배자들의 행렬을 기억할 것이다. 신기한 현상이다. 소련에서는 스탈린의 동상이 무너진 지 오랜데 중국에서는 왜 마우쩌둥 초상화가 아직도 천안문 광장에 버젓이 걸려 있는가. 더구나 그는 문화혁명의 실패로 수천만명을 죽게 한 장본인이고 한때 덩샤오핑을 축출한 후 귀양까지 보낸 인물이다. 그가 두고두고 한을 품을 수 있는 지도자였다.
그러나 덩샤오핑이 정권을 잡은 후 마우쩌둥 격하운동을 벌이고 그의 심복 군장성들과 홍위병들을 모두 감옥에 보냈다면 오늘의 평화적인 권력승계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피비린내 나는 숙청바람이 불었을 것이고 정권을 잡은 쪽에서는 보복이 두려워 절대 정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풍토가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자기와 가족 친지들이 죽는데 정권을 내놓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덩샤오핑은 자신이 겪은 아픔을 더 이상 다른 지도자들이 되풀이하는 것을 막는 것이 그가 중국 역사에서 지닌 사명으로 생각하고 마우쩌둥 세력을 모두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경제건설이라는 용광로 속에 이들을 집어넣어 딴 생각을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지도자였다.
덩샤오핑이 남긴 선례가 있기 때문에 후진타오가 군 지휘권을 가졌다해서 장쩌민을 냉대하는 일은 당분간 불가능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장쩌민이 15년 집권동안 당과 군부에 심어놓은 세력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군에서 대장만 75명이나 된다고 하니 그의 인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된다. 현재로는 오히려 후진타오가 앞으로도 계속 장쩌민에게 도움을 구해야 할 형편이다. 바로 이같은 방정식이 덩샤오핑이 세워 놓은 권력승계의 비결이다. 공산당체제에서만 가능한 시스템이다.
허허 실실-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중국인들의 처세술이 정치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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