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한국일보가 펼치는 행사 중에 ‘문화기행’이라는 것이 있다. 애독자들을 초청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1일 여행하는 하이킹 행사다. 전부터 서울가면 꼭 참여하리라 마음먹고 있던 중 이번에 우연히 기회가 찾아와 지난주 강원도 인제 부근 점룡골로 하이킹을 갔다. 한국의 가을 메신저는 뭐니뭐니해도 코스모스다. 강원도 산 속 도로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의 흔들리는 모습은 혼자 보기에 너무 아까웠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경기도 양평을 지나게 되었다. 서울서 1시간 거리의 양평은 레스토랑, 한식당, 카페, 모텔, 호텔이 줄을 이은 타운으로 야경은 눈이 부실 정도로 휘황찬란하다. 토요일 저녁 7시면 식당마다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로 붐벼야 정상이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다보니 식당마다 텅텅 비어 있고 모텔, 호텔 주차장에도 차가 별로 없다. 타운 전체가 썰렁한 분위기다. 운전기사에게 양평이 왜 이렇게 조용하냐고 물어보니까 “시 전체가 망하게 됐습니다. 이 불경기에 누가 양평까지 오겠습니까”라면 한숨을 쉰다.
“양평은 문제도 아닙니다. 서울역 지하철과 파고다 공원, 을지로 3가 지하철에 새벽이나 밤 11쯤 가보세요. 한국이 어떻게 변했나 실감날 겁니다”라고 옆 사람이 거든다. 그래서 당장 그 날밤 12쯤 서울역 지하철과 을지로 3가 지하철에 가보았다. 펼쳐진 광경은 내 눈이 의심될 정도였다. 미국 남북전쟁 영화에 등장하는 부상자 수용소를 연상케 했다. 복도에 홈리스들이 이불을 깔고 드러누워 있는데 가도가도 그 장면이 끊어지지를 않는다.
2년 전에도 지하철에서 홈리스들이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파고다 공원에서 노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도 전부터 있었지만 지금처럼 젊은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서울역 지하철 무료 급식소에는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한국이 홈리스 공화국이 아닐진대 어쩌다가 이렇게 변했는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려움은 있지만 위기는 아니다”라고 대통령은 말하고 있지만 장사 안되고 쓸 돈 없고, 일자리 없고 투자 안되고, 외국자본 빠져나가고 중소기업과 영세상인들이 줄을 이어 문을 닫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인데 무슨 이야기인지 납득이 안 된다. 이러니 대통령의 시각이 한국 경제의 최대 문제점이라는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여행객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경제불황을 대통령이 못 느끼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위기 아닐까. 세금감면, 금리인하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그건 단기 처방일 뿐이다. 김대중 정부가 경제를 단기 처방한 결과가 어찌 되었는가. 내수경기 부양한다고 카드를 남발하여 한때 흥청망청 하더니 온 국민을 빚더미 위에 올려놓아 자살률이 껑충 뛰어오르지 않았는가. 배에 물이 찼으면 어디가 구멍이 났는지 알고 물을 퍼내야 하는 것이 경제 치유의 특징이다.
한국 경제는 어디서 구멍이 뚫렸는가. 좌향좌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이 좌향좌로 기운다는 인상 때문에 기업가의 의지가 약해지고 소비심리가 위축될 대로 위축되어 있다. 이 때문에 악성루머가 끊임없이 나돌아 돈이 있어도 쓰고 싶은 생각이 없다. 게다가 국민이 느끼고 있는 경제 고통을 대통령이 느끼지 못하고 자꾸 이론적으로만 변명하고 있으니 더 불안해지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불황은 정신적인 치유 없이는 무슨 약을 써도 효과가 없을 것 같다. (서울에서)
이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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