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문에 아테네올림픽을 풍자하는 재미있는 시사만평이 실려 있다. 그 내용은 인부가 급하게 풀에 물을 채우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스프링보드에 올라선 다이빙선수가 밑을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이다. 아테네올림픽이 개막이 다 되도록 준비가 안되었음을 빗댄 만평이었다.
오늘 TV 뉴스를 보니까 개막 3일 전인데도 아직 일부 경기장에서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메인 스테디엄에 열렸다 닫혔다 하는 초현대식 유리지붕을 만든다고 자랑하더니 깜깜 무소식이다. 공사가 늦어져 지붕 없는 채로 대회가 열리는 모양이다.
마라톤 코스의 도로 포장도 엊그제 가까스로 끝났다. 인도는 아직도 비포장 상태다. 마라톤 코스 작업은 건설업자의 파산으로 한동안 공사가 중단되어 IOC로부터 여러 차례 경고를 받아왔었다. 왜 파산했나. 공사비가 딴 곳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는 아직도 테이블 밑에서 돈이 왔다갔다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엊그제부터 청소부 노조가 올림픽 기간에 특별수당을 안주면 파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건 예상치도 못했던 골치다. 그저 전광석화처럼 날씬하게 마감기일 안에 일을 마친 것은 한국의 H기업이 낙찰을 따낸 지하철 전동차뿐이다. 아테네는 올림픽을 계기로 새 지하철을 건설했는데 여기에 납품된 전동차들이 모두 ‘MADE IN KOREA’다. 한국인의 ‘빨리빨리’가 아테네에서처럼 돋보인 적이 없다.
결국 아테네올림픽은 아슬아슬하게 개막은 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리스인들의 간장을 태우는 작업과정이 화제에 올라 국민 이미지가 상처를 입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리스가 왼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군부 독재가 무너진 1981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정부 활동을 하던 영화배우 메리나 메르꿀리가 문화부장관이 된 것도 이때다. 사회의 모든 체제가 평등을 목표로 삼다보니 그리스가 사회주의 국가로 변해버린 것이다. 당연히 노조의 파워가 커지고 부자들은 돈을 해외로 빼돌리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스에서는 외국인은 무슨 비즈니스를 하든지 그리스인과 동업해야 하며 사업체 명의가 그리스인 명의로 등록되어야 한다. 한국인들이 식당이나 여행사를 하면서 이름을 빌려준 동업자 그리스인에게 꼬박꼬박 생활비를 갖다 바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가 이 정도로 까다롭다.
그러나 사회복지는 강화되어 일하는 사람의 수입이나 실직자 수당이나 비슷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일하기 싫어하는 풍토가 사회에 번지는 법이다. 열심히 일해 봤자 세금으로 다 뺐기고 실업자 뒷받침하기 위해 땀흘리는 꼴이 된다. 부는 평준화되었지만 국가는 빈곤해져 이웃 나라에 비해 경제사정이 말이 아니다.
오늘의 그리스는 한국에게 타산지석이다. 군부독재의 반동으로 사회주의가 팽창했고 노조의 목소리가 커지자 외국자본이 겁을 내 다 빠져나가 경제가 풍비박산이 나버린 것이다. 국민들이 오늘 쉬고 내일 놀자는 식으로 나오는데 국가추진 사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아테네 올림픽이 준비과정에서 말썽이 많았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이번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진다면 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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