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전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는데 한인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풋볼경기를 관람하면서 아무편도 들지 않고 보는 사람과 “달라스 카우보이냐, 워싱턴 레드스킨스냐” 응원하면서 보는 사람과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내 표 하나가 무슨 영향력이 있을 라고…” 식의 사고방식은 미국을 살아가는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 약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쓰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먹는다. 이민들은 커뮤니티를 생각해서라도 표의 힘을 휘두르는 시늉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오래 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LA 코리아타운에서 한인단체장들과 만나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한인단체장들은 코리아타운의 눈부신 성장을 자화자찬해 가며 주지사가 한인들을 좀 더 많이 고용해 줄 것 등을 건의했다. 그랬더니 이 주지사라는 사람 하는 말이 “한인 커뮤니티는 표가 얼마나 됩니까”라고 단도직입으로 묻는 것이 아닌가. 옆에서 지켜보던 기자가 민망해질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당시는 한인들 대부분이 영주권 따기에 바빴고 시민권자는 극히 드문 시절이라 표를 가졌다고 하기엔 너무나 부끄러운 숫자였다. 그때 당황하던 한인단체장의 얼굴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지금은 코리안 커뮤니티가 달라졌다. 미국 정치인들에게 당당한 자세로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표를 갖고 있다. 특히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인사회도 목에 힘을 줄 수 있는 처지다. 지난번 부시와 고어의 대결에서 플로리다주의 한 표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우리 눈으로 보지 않았는가. 케네디와 닉슨 대결 때에도 너무나 표 차이가 근소해 검표를 다시 하느냐 마느냐로 시끄러웠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도 아슬아슬한 표 차이가 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현재로는 민주당의 케리 후보와 공화당의 부시가 1~2% 차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는 직접선거 같이 보이지만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접선거다. 그리고 승자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다 차지하는 “WINNER TAKES ALL” 방식의 게임이다. 이같은 선거제도 때문에 미국에서는 유럽과는 달리 제3당 후보의 당선이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다수의 주에서 이겨도 캘리포니아나 뉴욕주처럼 선거인단 숫자가 많은 주에서 지면 낙선하게 된다. 예를 들어 A후보가 39개 주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해도 B후보가 캘리포니아, 뉴욕, 텍사스, 플로리다, 펜실베니아, 일리노이, 오하이오, 미시간, 뉴저지,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등 11개 주에서 이기면 B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그런데 한인 인구는 이 11개 주에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아이리시가 왜 미국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는가. 정치에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흑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권리를 찾게 되었는가. 정치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처음 시작한 것이 흑인들의 선거참여 캠페인이다. 히스패닉이나 중국인들이 미국이민 역사가 긴데 비해 파워를 보이지 못했는가. 정치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같은 유럽계지만 정치에 관심이 적은 이탈리아계는 아이리시에 비해 파워게임에 약했던 것도 미국 이민사의 좋은 본보기다. 후손들을 위해 선거에 관심을 갖자. 부시든 케리든 어느 한편에 서서 응원하면 미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될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하느냐, 공화당을 지지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무관심이 문제다. 미국에서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뿌리를 내리는 지름길이다.
이철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