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서 신부의 친구가 패션 쇼에 나오는 모델처럼 요란하게 차려입고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하객들의 시선이 온통 그녀에게 쏠려 그날의 주인공 이미지가 흐트러질 것이다. 게다가 신부보다 뛰어난 미모를 갖추는 날엔 신부가 빛을 잃게 된다. 이같은 원리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선거전에서 전당대회의 주인공은 당의 대통령후보다. 그를 빛나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을 피하는 것이 선거 전략의 ABC다. 그런데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 ABC 원칙이 무너지는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존 케리 후보의 부인 테레사 하인즈가 사소한 말실수로 도마 위에 올라 뉴스의 초점이 케리가 아니라 부인에게 쏠리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클린턴 부부가 전당대회 첫날 너무 인기를 끌어 존 케리 후보가 빛을 잃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던 중 부인이 홈런(?)을 날린 것이다.
테레사 하인즈는 전당대회 전날 펜실베니아주 유세에서 부시가 이끄는 현 정국을 ‘비미국적’이라는 말로 표현한 적이 있는데 보수계 신문의 논설 주간이 “당신이 말하는 비미국적이란 무엇을 뜻하는가”라고 묻자 “당신은 어느 신문사 소속인가”라고 되물었다. 피츠버그 트리뷴 리뷰 소속이라고 대답하자 테레사 하인즈는 분통을 터뜨리며 “이해가 가네. 당신은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어. 집어치워!”라고 내뱉었다. 이 신문은 보수계로 테레사의 전 남편인 하인즈 재벌에 대해 항상 헐뜯는 기사를 써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집어치워!(SHOVE IT)”라는 단어가 보통단어가 아니라 “SHOVE IT UP TO YOUR ASS”의 준말이기 때문에 욕에 속한다. 한글로는 이에 해당하는 적당한 단어가 없다. 투표가 몇 달 안 남았는데 독설로 유명한 테레사 하인즈를 앞으로 누가 컨트롤 할 것인가 등등 민주당 지지자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이 테레사 하인즈라는 여성은 스토리가 많은 사람이다.
존 케리 상원의원과는 95년 재혼했다. 그 이전에는 케첩 재벌인 하인즈 상원의원의 부인이었다. 하인즈 상원의원이 91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수십억달러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으며 다 큰 자녀 세 명을 데리고 존 케리 상원의원과 재혼한 것이다. 게다가 남편보다 다섯 살이나 연상이다. 이래저래 화제다. 그녀는 헤어스타일 다듬지 않기로도 유명한데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손이 커서 자선기부에 돈을 아끼지 않으며 여성권리 주장에 항상 앞장선다. 그는 전 남편을 칭찬하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지금도 전 남편의 성을 미들 네임으로 사용해 ‘테레사 하인즈 케리’가 공식 이름이다. “존 케리는 존 케리, 테레사 하인즈는 테레사 하인즈”라는 것이 그녀의 철학이다. 사람은 자기다워야 하며 남이 짜놓은 틀에 갇혀 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의 주목표는 “존 케리는 누구인가”를 알리는 것이다. 미국민들은 아직 존 케리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민주당의 전략도 부시를 비판하기보다 존 케리와 그의 정치철학을 알리는데 전력을 쏟기로 한 것인데 예상외로 그의 부인이 뉴스의 화제를 차지해 당황하고 있다. 공화당에서는 표정 관리하느라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다. 정치인이 부자 과부와 결혼하면 편리한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많다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잘못하면 ‘테레사 하인즈’ 요소는 이번 대통령 선거전에서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에게 ‘아킬레스 힐’로 다가올 가능성이 보인다.
이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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