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풀려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김선일씨가 결국 처형당하고 말았다. “나는 살고 싶다”고 울며 부르짖던 그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해 더욱 가슴 아프다. 아들의 납치소식을 듣고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은 모습으로 기자회견 하던 아버지의 모습도 눈에 선하고 “내 아들 좀 구해달라”고 호소하던 김씨 어머니의 안타까운 표정도 잊혀지지 않는다.
인질납치 사건에 대처하는 방법은 없을까.
북한을 납치사건에 대입해 보면 간단하게 답이 나온다. 북한인이 납치되어 24시간 안에 참수될 것이라는 최후 통첩을 평양 당국이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북한 주민들은 납치사건 발생을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북한 당국이 보도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인질 납치와 미디어는 물고기와 물의 관계다. 보도되지 않으면 납치행위가 공포분위기 조성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드라큘라가 낮에는 맥 쓰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보도가 있어 인질 참수 협박이 있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원수라 하여 인간의 달 착륙도 보도하지 않은 나라다. 하물며 이슬람 무장단체의 공갈쯤이야 끄떡도 않을 것이다. “죽일 테면 죽여봐라”는 자세로 나오는 데야 테러리스트도 당할 재주가 없는 법이다.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은 인질 협박은 개방체제에만 가능하고 폐쇄체제에는 안 먹혀든다는 사실이다. 언론 통제가 심한 나라를 상대로는 납치극이 통하지가 않는다. 북한, 쿠바, 이란, 중국, 러시아 같은 나라를 대상으로 인질극을 벌이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참수 협박은 민주주의 국가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치러야 하는 뼈아픈 대가다.
눈만 딱 감으면 인질범죄를 막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범인이 밝혀지면 그 가족들도 신고를 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감옥에 보내는 방법이다. 가족과 친척들이 피해를 입는 데야 테러리스트들도 범행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치시대 게슈타포가 사용한 ‘시펜하프’라는 연대책임 문책제도다. 나치 수용소에서 누가 탈출하면 다음날 조회에서 그 막사의 수용인 중 짝수를 고르거나 홀수를 택해 총살한 것도 바로 이같은 수법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이같은 제도 운영이 불가능하다. 테러리스트의 조직을 파악하려면 고문이 최고의 방법인데 이것도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어렵다. 미군이 이라크 감옥에서 이를 흉내내다가 지금 얼마나 곤경에 처해 있는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김선일씨가 당한 비극의 아이러니는 처형 이유가 한국이 미국과 가깝다는 테러범들의 주장이다. 한국에서는 반미데모가 한창이고, 미국도 한국이 과연 믿을 수 있는 맹방인가를 의심하고 있는 묘한 시점에서 김씨가 희생된 점이다. 알카에다에게는 친미로 몰려 납치 표적이 되어 있고, 미국으로부터는 찬밥 대접을 받고 있으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동대문에서 뺨맞고 서대문에 가서도 뺨맞고 오니 한국 외교의 좌표가 한심스럽다. 여기에다 일본인들은 미국과 더 친한 데도 풀려 나오고 한국인은 참수 당해야 하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이번 일로 이라크 파병까지 재고된다면 테러리스트의 장단에 춤추는 꼴이 되는 것이고 한미관계도 크게 상처를 입을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가 테러리스트에 이기는 길은 그들의 요구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 사람 잃고 나라 모양새마저 우스워지는 길은 피해야 한다. 남대문에 가서도 뺨맞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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