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의 89회 생일을 맞은 지난 2000년 2월6일, 낸시 여사가 남편에게 생일축하 키스를 하고 있다.
맥카시즘 판치던 시절 좌익명단 올라
배우협회 회장 레이건과 첫 만남
이미지 관리맡아 ‘백악관 실세 안방’
대통령 기억못하는 치매남편 간병
‘레이건 신화’ 속에는 낸시 레이건 여사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사실 B급 배우에서 A급 대통령으로 탈바꿈한 레이건 신화는 낸시라는 헌신적인 배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레이건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온 낸시는 특히 퇴임후 알츠하이머에 걸린 남편을 10년간 외부로부터 철저히 격리시켜 간호하고 보호함으로써 그가 남긴 유산이 ‘치매’로 얼룩지는 것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70대 초반에 마주친 남편의 치매는 낸시 여사에게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그녀는 단 한번도 풀죽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낸시에게 지난 10년은 기막힌 인고의 세월이었다. 낸시의 막내딸 패티는 2003년 12월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하거나 걷거나 혼자 힘으로 먹지도 못하고 병상에 누워 있으며 82세의 어머니가 항상 곁을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레이건이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해 내지 못 한채 눈감은 후 조앤 드레이크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낸시 여사는 비통함 속에서도 고인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고 저 세상으로 떠난 데 대해 분명히 안도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 출신인 낸시 여사는 레이건을 할리웃에서 처음 만났다. 맥카시즘이 판을 치던 1950년 한 광고에 자신의 이름이 좌익 인사들의 명단과 함께 실린 것을 보고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당시 배우협회 회장이었던 레이건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고, 결국 2년만에 이혼남인 그와 연분을 맺었다.
결혼 이후 낸시 여사는 남편의 이미지 관리인의 역할을 도맡았고 그를 캘리포니아주지사로, 거기서 다시 미국의 40대 대통령으로 키워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낸시 여사는 역대 대통령 부인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백악관의 실세’였고 레이건 전대통령도 그녀의 정치적 견해에 귀를 기울였다.
레이건의 그림자로 반세기를 살아온 낸시는 이제 남편이 남긴 거대한 정치적 유산의 관리인으로 11월 대선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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