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이 반유대인 감정을 부채질한다 하여 미국인 커뮤니티 내에서도 시끌시끌한 모양이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를 죄 없는 사람으로 판단하여 석방하려 하는데 제사장 가야바 등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의 십자가형 처벌을 끈질기게 주장하는 장면이 너무 리얼하다.
십자가형은 당시 로마인들이 고안해 낸 것으로 사람이 고통을 느끼면서 서서히 죽어가도록 방치해 놓는 극형 중의 극형이다. 웅장한 건축물과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예술성이 뛰어난 로마인들이 어떻게 십자가형과 같은 잔인한 형벌을 같은 머리에서 생각해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역사의 흐름은 너무나 아이러니컬하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크리스천들을 그렇게나 탄압하던 로마인들이 그 후 기독교인으로 변했으니 말이다. 기적에 가까운 이 변신은 AD325년에 일어난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그의 정적 막센티우트와 전쟁을 벌였을 때 크리스천들이 콘스탄틴 편을 들어 그를 이기게 했다. 이어 그가 동로마 제국의 리치니우스 황제와 결전을 벌였을 때도 크리스천들이 전투의 주력을 이루어 승리를 거두자 콘스탄틴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기독교에 대한 모든 제재를 풀고 오히려 한 걸 음 더 나아가 신앙전파에 앞장 선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장본인이라 하여 유대인 증오풍토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도 콘스탄틴 대제 때부터다. 그는 유대인들의 로마인과의 결혼을 사형으로 다스릴 정도였고,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모두 추방했으며 무엇보다 유대교를 상종하지 못할 종교라는 뜻의 ‘섹타 네파리아’로 선언해 버렸다. 기독교 탄압시대가 유대인 탄압시대로 세상이 180도 바뀐 것이다. 유대인 제사장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후손이 벌을 받은 셈이다.
왜 당시의 유대인 제사장들은 이와 같은 함정에 빠졌을까. 유대인들의 신앙이 너무 율법에 얽매어 아집과 교조주의를 생산해 냈기 때문이다. 예수가 제사장들의 미움을 사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도 이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부르짖었기 때문이다. 종교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종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혁신적인 사고방식은 안식일 해석 등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인간에게는 율법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웃뿐만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된다고 주장했으며 그는 몸으로 실천해 보였다. 로마 병정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는 순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외치는 장면은 예수의 사상이 어떤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에는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는 겁이 나서 다 도망갔던 제자들이 후일 어떻게 해서 목숨을 걸고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했고, 시몬은 예수를 증거 하다가 살해되었고, 요한은 기름가마에 넣어져 죽었고, 도마는 톱으로 무참하게 켜졌고, 바들로메오는 살갗이 벗겨져진 후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뒀다. 일반적인 논리로 따지면 리더가 죽으면 추종자들의 사기가 떨어져 조직이 와해되는 법이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들은 반대현상을 보였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될 수가 있었을까. 예수가 무덤에서 일어나 걸어나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그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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