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베이징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타면 이런 스티커가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올림픽 잘 치러 새로운 베이징 보여주자.”
올림픽 준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도시마다 대형 관광호텔을 짓고 있고 그 고장의 먹거리 축제, 각종 페스티벌, 미인대회와 패션쇼 등의 이벤트가 요란하다. 아직 4년이나 남았는데 너무 앞서 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반면 아테네는 올림픽이 코앞에 닥쳤는데 너무 뒤쳐져 있는 인상이다. “그리스가 올림픽 개최하는 나라 맞아?”라는 질문이 어울릴 정도로 조용하다. 공항에도 올림픽 사인판 하나 없고 거리에서도 올림픽 관계 포스터나 배너를 발견할 수가 없다. 신축중인 올림픽 스테디엄도 공사가 예정보다 뒤쳐져 있고 호텔방도 턱없이 모자라 정부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경기기간에 개인 별장들을 비워줄 것을 권장하고 있다. 관광객들을 민박시키기 위한 플랜을 당국이 본격적으로 짜고 있다.
별장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웬만큼 사는 아테네 사람 치고 별장 안 가진 사람이 없다. 쉽게 말해 “밥은 굶어도 별장은 있어야 된다”는 것이 아테네인들의 사고방식이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대부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아테네 사람들은 옷 입은 것 봐서는 잘사는지 못사는지 모른다. 한국인과는 달리 옷치장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허름하게 차려 입었는데 집에 가보면 기가 막히게 잘 꾸며놨고 별장도 큼직한 것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 정부는 올림픽기간에 이 별장들을 징발(?)하는 모양이다.
그리스인들은 하루 일하고 하루 노는 스타일이다. 또 말이 많고 남자들은 앉았다 하면 정치 토론이다. 어떤 때는 찻집에서 목청을 돋우어 토론하다 싸우는 해프닝도 자주 일어난다. 그리스는 1828년 독립한 이래 정권이 여러 번 바뀌면서 초대 대통령(카포 디스트리아스)이 암살 당하기도 하고, 공산당 내란도 있었고, 왕정과 공화정이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는 등 현재의 공화제가 뿌리내리기까지 파란만장의 길을 걸어왔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 필립공도 그리스 왕가 출신이다. 또 여배우 메리나 메르꿀리가 한때 해외에서 보수파인 군부 세력에 대항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치에 관한 열기가 지나치다 보니 그리스 국민들은 올림픽보다 당장 오는 3월25일에 실시되는 총선거가 더 화제다. 파판드로우가 이끄는 사회주의 진보정당이냐, 카라만리스의 보수정당이냐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그리스 정치는 파판드로우 가문과 카라만리스 가문이 3대째 정권을 뺏거나 빼앗기면서 40년 동안 싸우고 있다. 이번에는 손자들의 대결이다. 김영삼씨와 김대중씨의 아들과 손자들이 3대에 걸쳐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는다고 생각하면 그리스 정국이 지금 얼마나 스릴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올림픽은 그 다음 관심사다.
그러나 누가 이기더라도 두 사람이 올림픽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있다. 올림픽 기간동안만은 세계가 전쟁을 중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대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동안에는 모든 참가국들이 휴전했었다. 이들은 올림픽이 아테네로 돌아온 이상 아테네 정신을 지키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라는 의견이며 어느 나라가 금메달을 몇 개 따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이야기다. 이 정신의 실현을 위해 그리스 정부는 아랍국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있으며 우선 자신들부터 터키와 화해의 시범을 보였다. 역시 그리스인들은 소크라테스의 후예다운 데가 있다. 만약 이번 올림픽이 며칠만이라도 세계에서 총성을 멎게만 한다면 올림픽 준비를 게을리 하고 있는 그리스인들의 ‘만만디’ 태도가 게으름이 아닌 ‘여유 있는 자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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