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내 중심가에 야스쿠니라는 신사가 있다. 고이즈미 수상이 새해만 되면 참배하여 뉴스의 초점으로 떠오르는 곳이다. 이 신사 뜰 안에 전쟁기념관이 있는데 2층에 일본 역대 명장들의 사진과 일생기가 전시되어 있다.
일본인들이 근세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무인은 노일전쟁의 영웅 노기 대장이다. 일본인들은 그를 ‘마지막 사무라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메이지 천황이 사망한 날 그와 부인이 함께 자살, 주인을 따라 죽는 사무라이 정신의 시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노일전쟁에서의 승리는 당시 일본인들에게 대단한 긍지를 심어주었다. 온 나라가 흥분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도 3만명이나 전사자를 냈다. 메이지 천황에게 승전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노기는 울었다. 메이지는 노기의 눈물이 할복자살 결심임을 알아채고 그대는 내가 살아있는 한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 그의 할복을 막았다고 한다. 그러나 천황이 죽자 노기는 더 살아야 할 생의 의미를 잃어 배를 갈라죽는 셋뿌꾸를 결행했다.
일본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고전연극 중에 ‘쥬신구라’라는 것이 있다. 억울하게 죽은 영주의 복수를 위해 47명의 사무라이가 갖은 수모를 참아가며 지내다 결국 주인의 원수를 갚고 할복자살하는 스토리인데 실제 아까호번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몇 년 전 한국에서 ‘가신’이라는 소설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사무라이의 삶에서는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다. 수모를 당하고 사느니 죽음을 택한다는 것이 이들의 인생관이며 목숨을 초개처럼 여긴다. 죽음의 미학이 가장 발달된 나라가 일본이다. 가족 동반자살이 많은 것도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는 사무라이과의 사고방식이다.
사무라이들이 배를 갈라 죽는 것을 셋뿌꾸라고 하는데 복부 왼쪽에서부터 칼로 그어 오른쪽으로 가다가 ‘ㄱ’자로 내려와야 하며 피를 많이 흘릴수록 멋있는 셋뿌꾸로 인정받는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한 날 아나미 육군상, 스기야마 원수 등 600여명이 셋뿌꾸를 했다. 또 몇 년 전 니쇼이와이라는 회사의 상무가 탈세로 조사 받게되자 자기만 없어지면 회사는 살아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살했다.
그가 남긴 유서는 외신의 화젯거리가 되었는데 개인은 유한하고 회사는 영원하다고 쓰여져 있었다. 영주에 대한 충성이 회사에 대한 충성으로 사무라이 정신이 시대적인 변화에 적응한 것이다. 일부 일본인들은 죽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처럼 보인다.
요즘 톰 크루즈가 주연하는 ‘마지막 사무라이’가 극장가에서 화제다.
메이지유신 8년에 사무라이의 녹봉제를 없애고, 칼을 못 차고 다니게 하고, 상투를 자르는 등 강제조치가 시행되자 사쓰마 지방의 사무라이들이 반란을 일으켜 신식 군인인 관군과 혈전을 벌인 기록이 있는데 영화 ‘마지막 사무라이’의 배경이 이 반란인 것 같다. 이 반란은 메이지 천황의 측근이었고 사무라이 중의 사무라이로 불리던 ‘사이고’가 지휘했으며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가쓰모도’가 바로 ‘사이고’가 아닌가 싶다.
현대의 상술은 문화와 상품을 함께 끼워서 파는 것이다. NBC-TV 연속극 ‘쇼군’이 나온 후 미국에서 스시 붐이 일어났는데 이번 ‘마지막 사무라이’가 또 무슨 붐을 일으킬지 궁금하기도 하고 약간 배가 아프기도 하다. 미국이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을 미화시켜 일본문화를 선전해 주는 셈인데 일본인들을 미워해 강제 수용할 때와는 격세지감이다.
한국문화를 배경으로 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미주 한인들의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고 장사도 도움이 될텐데 겨우 전쟁고아 아니면 핵전쟁 꿈꾸는 007영화만 나오니 답답한 심정이다.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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