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면 그해를 돌아보며 이런 저런 순위들이 발표되는 데 그중 부러운 게 하나 있다. 한국에는 없고 미국에만 있어서 부러운 순위, 바로 기부금을 가장 많이 낸 부자들 명단이다.
비즈니스위크 최신호에 소개된 기부‘큰 손’ 명단을 보면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부부, 인텔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 부부, 델 컴퓨터 창업자 마이클 델 부부, 투자가 조지 소로스, 월마트 창업자 집안인 월튼 패밀리, CNN 설립자인 테드 터너 등 낯익은 이름들이 줄을 잇는다. 몇 년째 1위를 고수하는 게이츠부부의 지난 5년간 기부액은 무려 229억 달러. 2위인 무어부부의 기부액이 70억달러이고 보면 게이츠는 비교가 안되게 월등한 이 시대의 ‘큰 손’이다.
부자가 되면 자연스럽게 기부를 ‘도덕적 의무’로 여기는 미국의 이 부럽고도 아름다운 전통은 앤드루 카네기가 모범을 보였다.
19세기 미국의 철강왕으로 불리는 카네기는 부자들의 인생은 모름지기 두 시기로 나뉘어야 한다고 보았다. 부를 획득하는 전반부와 축적된 부를 사회에 되돌리는 후반부이다. 원 없이 돈을 벌고, 생애 마지막 20년 간 원 없이 자선사업을 한 그는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런 확실한 모범이 없어서 일까, 한국의 재벌 기업들은 정치헌금 외에는 별로 돈을 내놓는 법이 없는 것 같다. 제도보다는 정이 앞서는 한국에서는 대신 평범한 서민들이 얼마 안되는 소유를 이웃과 나누고, 평생 모은 재산을 선뜻 기부해서 감동을 준다.
얼마전 한국 뉴스에는 해마다 김장철이면 수백포기 김장을 해서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환경 미화원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자신도 생활이 넉넉할 리 없는 그가 매년 없는 돈 쪼개고, 피곤한 몸 혹사하며 김장 잔치를 하는 이유는 “젊어서 너무 어려워 김치도 못 담아 먹던 시절이 생각나서”이다.
눈 한번 질끈 감으면 아무도 말할 사람 없는 일을 매년 계속하면서 그가 얻는 것은 ‘부자가 된 행복감’이다.
“김치를 나눠주고 돌아올 때가 제일 행복해요. 이 세상에서 부자는 나밖에 없는 것 같아요”
3억원을 서울대학병원에 기부한 구순의 한 할머니도 대단한 부자가 아니기는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평생 모은 재산인 땅을 팔아 3억원을 만들었는데 그것만으로는 액수가 적은 것 같아서 살고 있는 아파트도 같이 기부하기로 약속을 했다. 움켜쥐고 있는 것보다 내어 주는 것의 기쁨을 그 할머니는 알고 있었다.
몇해전 TV에서 다른 아이들 점심 먹을 때 도시락이 없어 굶는 아이들을 보고는 결식 아동 돕기를 시작했을 때의 경험이다.
“(내가) 밥을 먹을 때마다 ‘그 아이들도 먹겠구나’하고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거야”
시인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는 시가 있다. 한국에서 겨울철이면 길거리마다 발에 채이던 연탄재에 우리의 삶을 비교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짧은 시이다. 한달이 채 남지 않은 올해를 보내면서 우리 모두 너에게, 그리고 나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한해를 살면서 누구 한사람에게라도 따뜻한 온기를 보낸 적이 있는가. 연탄 사들이기에만 급급해서 한번도 내 연탄에 불을 지펴 남에게 훈기를 보낼 생각을 못한 것은 아닌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12월을 ‘무소유의 달’이라고 부른다. 잎과 꽃, 열매를 다 내어주고 벌거벗고 서 있는 나무들, 그 허허벌판을 보면서 붙인 이름으로 짐작이 된다. 카네기식으로 하면 지금 자연은 내어주는 시기, 부자의 생애 후반부에 서있다.
‘부자가 된 행복감’은 부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이 가졌다고 부자가 아니라 많이 주는 사람이 부자이다. 주는 만큼, 우리가 온기를 보낸 만큼 우리는 부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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