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색 터번을 두른 노인이 깊은 눈을 감고 인생의 역정을 풀어내듯 딩디-잉 앵앵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베낭을 깔고 앉아서 도무지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듣는 그의 연주에 나그네의 무료함이 조금 씩 녹아내린다. 몇 곡의 연주가 끝나고, 거리의 악사도 짐을 꾸릴 무렵 드디어 뽀오얀 먼지를 일으키며 위풍도 당당하게 버스가 나타났다.
인도에서는 열두 시간 이상의 장거리 운행을 할 때는 주로 밤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게 되는데, 기차 여행은 다소 안전한 편이지만 밤 버스는 정말 목숨 걸고 타야 한다. 버스의 운전석 앞에는 쉬바, 가네쉬, 하누만, 깔리 등, 이름도 알 수 없는 수 많은 신상들이 각자의 믿음에 따라 모셔져 있고, 출발 전에 작은 신전 앞에 향을 피우고, 짧은 기도를 마친 운전기사는 모든 안전운행을 신들에게 맡긴 채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일차선 도로를 용감무쌍하게 질주한다.
아찔아찔한 순간들이 몇 차례 지난 후, 버스는 휴게소도 아닌 휴게소에 멈추었다. 그리고 각자 볼 일을 마친 우리는 오직 신의 가호를 바라며 다시 버스에 올랐다. 얼마를 달렸을까, 정말 이상한 느낌의 순간이 스쳐 지나가고, 왠지 무슨 심상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다라고 생각한 순간, 그 육중한 버스가 무엇인가에 받혀 꽝 소리를 내며 완전히 전복되었다. 유리창이 깨어지고, 의자가 튀어 나오고, 사람들의 짧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떨어져 나온 의자에 파묻힌 나를 사람들이 꺼내주어 간신히 버스에서 빠져나왔다.
한 밤의 어둠속에 어디인지를 분간하기 힘든 길 한 복판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놀란 운전사는 어디론가 달아났고, 어느 이스라엘 친구는 척추가 부러지고, 덴마크에서 왔다는 청년과 몇몇 사람들은 팔과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어떤 사람들은 사라진 베낭을 찾아서 어둠 속을 더듬거린다. 두세 시간이 지난 후에 경찰이 왔고, 버스는 내일 아침에 올 거라는 말을 남긴 그들은 거의 도움도 없이 사라졌다.
도로에서 한참을 앉아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누군가 우리를 빈 건물로 데려갔다. 어떤 도움도 요구하기 힘들고, 어떤 보장도 받기가 힘든 상황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우리는 이름도 알 수 없는 그곳에서 밤을 새웠고, 버스는 다음 날 아침 열시 경에 도착했다.
정말 극한 상황, 생명의 위협이 닥친 순간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도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더 열심히 살지 못 했던 것에 대한 후회, 죽음에 대한 공포, 그런 것들 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하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 망고가 찌그러 들었을까?" 정말 우스꽝 스러운 생각이지 아니한가.
나는 망고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버스를 타기 전에 큼직하고 잘 익은 망고 서너 개를 샀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면 먹으려고 선반 위에 올려 놓았었다. 그 한 생각이 나의 의식에 저장되어 있다가 그 순간 튀어나온 것이다. 하필이면 그런 순간 왜 망고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을까. 아침 저녁으로 붙들고 놓치 않았던 나의 화두는 십만 팔천리 달아나고, 어둠속의 번개 처럼 나의 눈을 뜨게한 것이 망고였다.
비가 내린다. 밤에 비가 내리면
어제의 발자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마치 지나간 시간들이
입을 수 없는 작은 옷에 불과 하듯이.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