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의 화제는 샌프란시스코 해변에 떠오른 한 임신부와 8개월 된 태아의 사체를 둘러싼 범죄 스토리다. 전국이 떠들썩하다. 그도 그럴 것이 변사체의 여인은 임신한 교사인데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행방불명된 이후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이 촛불시위까지 벌여가며 이 여교사 찾기 캠페인을 펴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눈물로 아내를 찾아달라고 호소하던 남편이 범행 용의자로 떠오르던 중 부인의 시체가 바다에서 발견돼 그가 범인이냐 아니냐가 화제가 되고 있다.
남편은 부인 몰래 다른 여성과 바람피운 것이 드러났다.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임신 8개월된 아내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인가. 천인공노할 범죄라는 것이 시민들의 생각이다. 부인 살해 혐의로 구속된 스캇 피터슨은 30세, 죽은 부인 레이시 피터슨은 27세로 동네에서 가장 모범적인 부부로 알려져 있었다는데 사건의 미묘함이 있다. 부부 관계는 겉으로만 봐서는 정말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가족들의 기자회견 광경이다. 죽은 여교사의 친아버지와 의붓아버지가 함께 나와 회견을 한 데다가 의붓아버지가 친아버지보다 더 슬퍼하며 가족의 대표 이미지를 심은 점이다. 재혼한 어머니와 계부 그리고 생부 등 3명이 한자리에 모여 기자회견 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인 문화에서는 볼 수 없는 기현상이다. 두 남자 중 어느 한 남자는 빠져주어야 하는 것이 한국식 그림이다.
몇년 전 코소보 작전 도중 추락한 미 공군조종사가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백악관 디너에 초청 받은 적이 있었다. 이때 오그래디라는 조종사는 재혼한 어머니와 계부, 그리고 친아버지와 함께 백악관에 나타나 시선을 모았었다. 가족끼리의 모임은 몰라도 대통령 부부와 함께 하는 디너에 생부와 계부를 함께 초대해 달라고 백악관에 부탁한 조종사의 용기도 그렇지만 이를 이해하고 쾌히 승낙하는 대통령도 너무나 ‘미국식’이다.
언젠가 본란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미국인들의 관습과 문화를 이해하기 힘든 대표적인 예가 재클린 오나시스의 장례식이다. 재혼했는데도 죽어서는 케네디 대통령 옆에 묻히고 비석에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라고 새겨져 있다. 그리고 장례식에서는 재클린의 세번째 남편인 보석재벌 템플턴이 조사를 읽었다. 또 뉴욕타임스 등 모든 신문이 재클린의 장례식 기사를 1면 톱으로 다루며 칭송한 점이다.
한국에서 장관도 지내고 대통령 비서실장도 지낸 ‘왕년의 정치인’과 만나 지난날을 화제로 떠올리며, 옛날 정객들의 안부를 물었다. 내가 놀란 것은 부인을 잃은 그 유명 인사들이 인생 말년에 혼자 살 줄 알았는데 재혼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들은 자식 있는 이혼녀는 물론 과부와 재혼하는 것도 꺼려 될 수 있으면 처녀 장가를 가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이유는 자식이 있는 여성은 아무래도 자식쪽에 마음이 기울어져 나이 많은 남편 시중에 지장이 있게 마련이라고 했다. 그래서 딸보다 더 젊은 처녀에게 장가를 가는 대신 유산을 자식들에게 주지 않고 젊은 부인에게 다 준다는 것이다. 공양미 300석을 내고 심청이를 받아들이는 셈이다. 자식이 있는 과부도 꺼려하는데 하물며 재혼한 전처가 현재의 남편을 대동하고 나타났을 때 자리를 함께 한다는 것은 한국 남성들에게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현실이다.
미국에 살면 미국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한인 2세들도 이 문제만은 미국식으로 소화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혼한 2세들을 보면 자녀들을 만나러 갈 때 재혼한 아내의 집으로 가서 픽업하는 것을 지옥처럼 여겨 사람을 따로 고용할 정도고 여성은 더구나 재혼한 남편 집 앞에 나타나기를 꺼려한다.
미국인이 되려면 미국시민권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미국인의 이혼문화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한국남성 특히 1세들에게는 별세계 이야기인 것 같다.
이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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