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남편을 여의고 혼자된 이후 오남매를 키우며 먹고살기 바빠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 제대로 해 주지 못한 것이 제일 마음에 걸립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잘 자라서 제 몫을 하고 있는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난 주말 열린 워싱턴 가정상담소 연례 만찬에서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한 오정희씨(58, 사진)는 마흔 한 살 되던 1986년 혼자된 이후 그야말로 가시밭길의 인생을 걸어왔다.
그는 서울 노고산동에 거주하다가 지난 73년 남편 오준호씨와 올망졸망한 자녀 셋을 데리고 이민했다. 이후 폴스 처치에서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왔다.
그러던 86년,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았다. 병명은 간암말기. 병을 선고받은 지 3주만에 남편은 8세부터 17세까지의 자녀 다섯만을 남겨놓은 채 이 세상과의 인연의 끈을 놓아버렸다.
혼자된 이후 그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당장 눈앞에 닥친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남편이 하던 자동차 정비소를 2년간 운영한 것을 비롯 세탁소 등을 거쳐 13년째 워싱턴 D.C 동물원 근처에서 구두수선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또 80이 가까운 친정어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후 시동생 두 명까지 챙겨야 하는 ‘집안의 가장’역할을 도맡았다.
"어렸을 때부터 친정어머니에게서 밥은 굶어도 학교는 보내야 한다고 듣고 자랐습니다. 딱딱한 빵 한조각과 식은 커피로 점심을 먹으면서도 자식들이 심성 곱고 올곧게 자라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우리시대의 모든 어머니가 그랬듯이 그 역시 자신은 변변한 옷 한 벌 없이 오직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의 손은 남자의 손보다도 더 거칠고 구두약이 묻어 늘 새까맣다.
자녀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함께 모든 어려움속에서도 그를 지탱해 준 것은 깊은 신앙심. 맥클린 한인장로교회에 출석중인 그는 새벽예배를 거른 적이 없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1남 4녀중 두 자녀는 버지니아주립대(UVA)를 졸업했고 나머지자녀는 듀크대, 제임스 매디슨 대, VCU등을 거쳐 변호사, 치과의사, 컴퓨터 엔지니어, 전도사 등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이들 5남매중 세 자녀가 토마스 제퍼슨 과학고를 졸업한 수재들로 모두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유일한 아들인 존(25)씨가 틴에이저 시절 방황하던 시기였다. 그때만큼 먼저 가버린 남편이 간절히 생각나던 때도 없었다고. 방황하던 아들도 지금은 마음을 잡고 성실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남은 소망으로 "오남매가 부모가 못채워준 빈 자리를 좋은 짝 만나 채우면서,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을 꼽았다.
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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