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게 하늘을 날던 미사일을 비행기가 들이받는 바람에 멀쩡한 미사일 하나가 박살났다.”
20년 전 대한항공기가 사할린 인근에서 소련 미사일에 격추된 후 소련 정부가 자위권을 내세우며 만행을 정당화하자 이를 비꼰 미국 만평 한 토막이다.
자위권을 내세우다 개망신 당한 것은 소련만이 아니다. 1964년 8월 존슨 대통령은 “공해상에서 순찰 중이던 미군 함정이 느닷없이 월맹 해군의 공격을 받았다”며 이에 대한 보복을 천명했다. 존슨의 요청대로 “미군에 대한 공격을 격퇴시키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 부여하는” 결의안을 연방 하원은 416대 0, 상원은 88대 2라는 압도적 표차로 가결했다. 미국이 월남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한 것은 이 때부터다.
문제는 이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란 점이다. 당시 월맹군의 공격은 없었으며 미군 함정은 한 밤중 망망대해에 대고 대포를 쐈다는 사실이 1971년 기밀 문서인 ‘펜타곤 페이퍼’의 공개로 밝혀졌다. 이 사건이 반전 열기에 기름을 부었음은 물론이다.
6·25를 일으켜 사흘만에 서울을 점령한 북한은 아직까지도 한국 전쟁이 한국의 북침을 응징하기 위한 싸움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2차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도 정예 기갑사단으로 무장된 독일군에게 마차로 대포를 끌고 다니는 전근대식 장비 밖에 없는 폴란드 군이 도발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쳐들어간다는 픽션을 내걸었다. 소련 공격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악한 침략자들까지 남의 나라를 쳐들어갈 때 “자신은 피해자며 전쟁을 하게 된 것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다”고 강변하는 것은 상대방의 도발이 없는 상태에서 먼저 공격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보여준다.
부시 대통령은 28일 국정연설을 통해 이라크 공격의 불가피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연설문을 보면 이라크 공격은 기정 사실로 굳어진 듯 하지만 그럼에도 전쟁을 반대하는 세계 여론이 수그러들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주요 신문 논조는 보다 구체적인 증거를 밝히라는 쪽이고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나라도 그 정도는 전쟁 사유로 약하다는 반응이다.
이런 반전 무드를 반전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먼저 뺨을 맞는 것이다. 지금도 날마다 쏴대고 있는 이라크 대공포에 미군기가 맞아 사상자가 발생한다면 하루아침에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런 사태를 유도하는 일은 없겠지만. 과연 부시가 어떻게 국내외의 반전 무드를 잠재울지 궁금하다.
<민경훈 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