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 주필의 테마여행
“밤 12시 넘어 명동에 가봤어?”
“아니”
“새벽 3시에 동대문 시장 가봤어?”
“못가봤어”
“새벽 2시에 신사동 네거리 뒷골목 가봤어?”
“거기 뭐가 있는데?”
서울 친구들에게 명동과 동대문 그리고 신사동 먹자골목의 새벽풍경을 이야기 해주면 그런 곳이 있었느냐면서 깜짝 놀란다.
나이가 먹은 사람들은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이 어떻게 변했는지 잘 모르는 예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에는 나이든 사람들이 가도 문전박대를 당하기 때문에 기성세대는 주로 호텔 커피숍을 만남의 장소로 선택한다. 일류 호텔은 차 한 잔에 1만원이다. 왜 그렇게 비싼 돈 내고 커피 마시느냐고 물으면 분위기 있고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이 없어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커피값이 비싼 것 같지만 젊은 사람들 모이는데서 스트레스 받는 것 보다 돈 좀 더 내고 마음 편히 차 한 잔 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다.
명동은 옛날 명동이 아니다. 옛날에는 옷도 명동에서 맞추어 입으면 고급에 속했고 멋쟁이를 ‘명동 신사’라고 불렀었다. 지금은 전혀 명동 분위기가 다르다. 싸구려 일색이고 대학생의 거리라고 불리울 정도로 20대가 판을 친다.
명동 중심부 대로에는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들로 꽉차 걸어다니기가 불편할 정도다. 유리 건물로 된 1, 2, 3층 미장원에서는 남자 미용사들이 여성들의 머리를 만져주고 있는 광경이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남자 미용사라는 직업을 조금도 쑥스러워 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표정들이다.
명동에서 괜찮은 커피숍에 50~60대의 여성이나 남성들이 들어가면 들창가에 앉히지 않고 구석으로 몰린다. 경로석 이다. 전면이 유리로 된 들창가에는 젊은 여성들을 앉혀야지 나이먹은 사람들이 앉아 있으면 젊은이들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날 돌체 다방 있던 곳은 해물탕 골목으로 변했는데 젊은이들로만 꽉 차있다.
새벽에 동대문 시장을 가보면 또 별천지다. 을지로 6가에서부터 동대문까지 이르는 서울 운동장 앞 거리는 사람들로 메워 터진다. 여기도 20대와 30대 거리다. 젊은 남녀가 손을 잡고 쇼핑하는 광경이 눈에 띤다. 이제는 데이트를 이런식으로 하는 모양이다.
서울 새벽거리 풍경중 가장 진풍경은 강남 신사동 네거리에 있는 먹자골목이다. 아구찜, 게장, 복매운탕이 전문인데 새벽 2시 넘어 몰려드는 손님들이 옷 잘입고 화장 진하게 한 여성들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옆 테이블에서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카페나 룸싸롱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다. 마치 새벽에 식당에서 미인대회가 열린 것처럼 분위기가 환하다. 여성들끼리 소주를 몇 병씩 마시면서도 남이 보면 어쩌나 하는 표정들이 아니다. 정정당당 하고 “우리가 뭐 어때서?” 하는 얼굴들이다.
기성세대는 서울 살면서도 젊은이들의 올빼미 문화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외국인들이 “서울 가면 구경할만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막연할 때가 많은데 이 새벽쇼핑이야 말로 관광물이라고 생각한다.
미주 한인들도 서울이 옛날과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보려면 새벽에 동대문 시장과 명동, 신사동 네거리를 구경할 일이다.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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