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 대통령과 관련해 전해지는 일화다. 재야시절, 그러니까 대통령 선거에서 케네디에게 패배하고 또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전에 뛰어 들었다가 고배를 마신 후다.
닉슨이 부인과 해외 나들이에 나섰다. 어찌보면 홀가분한 나들이었다. 잇단 충격적 패배후 정치 생활을 사실상 마감했기 때문이다.
닉슨은 아쉬운 해방감 속에 야인으로 해외여행에 나섰던 것. 이런 그를 대부분 나라들은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한마디로 VIP대접이다. 게다가 당시 프랑스 대통령 드골로부터 만나자는 연락까지 왔다.
닉슨은 자신을 왜 이처럼 환대하는지 몰라 그 이유를 물었다. 드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해외정책에 전문적 소양이 있어야 한다. 현재 미국의 정치인들 중 귀하와 같이 이 분야에 훈련된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러니 참고 기다려라. 반드시 당신의 때가 온다.”
드골의 예언은 적중했다. 1968년 닉슨은 재기에 성공해 백악관에 입성한 것이다.
‘해외정책을 모르면 대통령이 될 생각을 말아라’-. 미정치의 불문율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위기관리 능력이 있느냐의 물음이다. 서방의 종주국 미국을 이끌고 갈 대통령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그 불문율이 깨진 게 90년대다. 동서냉전이 끝나자 대통령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미국의 유권자들은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게 됐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탄생한 게 클린턴 행정부다.
9.11사태후 사정은 달라졌다. 위기관리 능력은 다시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필수덕목이 됐다. 부시가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면에서 합격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북한 핵위기가 확산되자 한국정부가 중국에 특사를 파견했다. 러시아에도 특사를 파견했다. 미국에 특사를 보내기도 전에 북한의 김정일 체제와 가까운 구 공산권 종주국에게 중재를 부탁한 것이다.
한국 외교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다. ‘북한 핵개발’급의 글로벌한 외교 이슈가 발생했을 때면 언제나 미국과 먼저 상의해 공조체제를 구축하던 게 한국의 외교였기 때문이다.
이는 그러므로 한국이 일방적 미국 의존에서 탈피해 독자 외교노선을 걷겠다는 시그널로 보여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통령에게 최우선으로 요구되는 자격여건은 그러면 무엇일까. 뛰어난 국제감각과 노련한 위기관리 능력이다. 말하자면 외교를 모르는 대통령은 곤란한 시대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일거수 일투족에 새삼 관심이 끌린다.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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