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사는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우며 독립운동을 하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8·15 해방 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친일파를 껴안고 독재를 하다 쫓겨나 꿈에도 그리던 조국 땅을 다시는 밟지 못하고 만리타향 하와이에서 숨을 거뒀다.
장기 집권의 대명사 박정희는 만주 군관 학교 출신이다. 일본 천황을 위해 “사꾸라 꽃처럼” 목숨을 바치겠다던 그가 18년 동안 민족 지도자를 자처한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용인 술의 귀재’로 불리던 그가 심복 중의 심복으로 믿었던 김재규에 의해 죽을 줄이야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전두환이 대통령 되는데 1등 공신이 있다면 그는 김재규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만 않았던들 그가 청와대를 넘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두환은 박정희의 적자를 자처하며 김재규를 죽였다.
그런 전두환은 자신을 형님처럼 떠받들던 노태우에 의해 백담사로 유배되고 노태우는 자신을 지켜줄 것으로 굳게 믿고 불러들인 김영삼에 의해 전두환과 함께 감옥에 갔다.
김현철의 비리와 전횡에 가장 비판적인 정치인 중 하나가 김대중이었다. 그런 김대중은 재임 기간 중 세 아들 중 둘을 감옥에 보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부시 행정부가 가장 싫어하는 한국 정치인을 하나 꼽으라면 아마 노무현이 선두를 다툴 것이다. 그런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주역은 미국이다.
미군이 장갑차로 여중생을 치어 죽이지만 않았던들, 사고가 난 후 즉시 사과하고 충분한 배상을 했던들, 미군 재판을 한달 만 연기했던들 청와대 안방은 이회창의 차지였을 것이다.
지금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노무현 진영은 승리의 기쁨에, 두 번이나 ‘따 놓은 당상’으로 여겼던 대통령 자리를 놓친 이회창 진영은 자괴감과 참담함에 젖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다보는 5년은 길지만 돌아보는 5년은 잠깐이다. 세월이 물처럼 흘러 2008년의 새해가 밝았을 때 이회창과 노무현 어느 쪽이 행복해 하고 있을 지는 신만이 알 일이다. 한국 같이 정치 판이 어지러운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 대통령 치고 끝이 좋았던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관 뚜껑에 못을 박기 전에는 누가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솔론의 경구를 음미하며 세모를 보낼 것을 권하고 싶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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