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올랐다. 베들레헴 거리. 한 피곤해 보이는 남자아이와 무거운 몸을 이끄는 소녀가 등장했다. 요셉과 마리아다. 집집마다 기웃거린다. 하룻밤 지낼 방을 구하는 장면이다.
여관 주인으로 분장한 어린 소녀가 대사를 외운다. “방이 없어요.” 요셉과 마리아는 힘없이 돌아선다. 어디서 하룻밤을 지내야 하나.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그들은 이들에게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여관 주인으로 나온 소녀는 이제 무대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떠나지 않고 있다. 힘없이 돌아서는 요셉과 마리아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객석에 앉은 부모가 초조하다. 저 아이가 도대체 무엇을 한담.
갑자기 대본에도 없는 말이 튀어나온다. “가지 말아요. 가지 말아요. 내 방을 드릴께.” 소녀는 울먹이며 뛰어가 요셉과 마리아를 붙잡는다.
연극은 엉망이 됐다. 잠시의 소요. 그러나 관객의 눈시울이 이내 뜨거워진다. 어린 소녀의 마음이 전달된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국의 대선이다. 북한의 핵문제가 마치 악성 종양인양 다시 불거졌다. 여중생의 죽음. 반미시위. 그리고 새 지도자 탄생.
죽음의 뉴스, 증오의 메시지다. 공포의 뉴스, 그리고 정치의 메시지로 뒤얽혀 12월이 간다. 그 와중에 크리스마스는 실종됐다.
감사의 계절. 나눔의 계절. 그래서 기쁨의 계절이 크리스마스다. 이 크리스마스가 언제부터인지 대목 세일의 장식문구 같이 돼버렸다. 올해는 거기다가 온통 정치다. 그 축제의 주인공은 완전히 망각됐다.
다시 막이 오른다. 아기 예수가 탄생해 구유에 놓여졌다. 양치는 목동이,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린다. ‘땅에는 평화, 하늘에는 영광…’-. 그런데 왜 구유에서 탄생하셨는가.
하나님이 지극히 작은 자로 오셔서 이 세상에 와 버림받은 자, 고통받는 자, 병든 자와 함께 하시겠다는 메시지다. 전 인류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의 메시지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는 전 인류의 축제가 된 것이다.
아주 작은 물질이, 작은 정성이 너무나 값있게 받아들여지는 작은 자들이 너무나 많다.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이다. 그들이 잊혀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밝고 따뜻한 방을 바라보며 떨고 있는 그들이 정치에, 증오에 가려 잊혀져 있었다.
오늘이…. 그렇지 24일이다. 아직 하루가 있다. 크리스마스까지 아직 귀중한 24시간이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할까. 꿈에서 깨어난 스크루지 영감이라도 된 느낌이다.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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